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라는 뜻은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 오셔서 '한 몸'이 되는 관계를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을 열고 들어가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보죠.
'온 성이 소동하여'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가면 내가 가진 이 땅의 가치관이 전부 흔들립니다. 이것이 '온 성이 소동하여 '라고 표현이 된 것입니다. 뉴스에 보면 지진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듣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땅을 흔드시는 이유도 '이 땅 조차 믿지 못하게 하심'을 통해 이 땅에서 파생한 모든 인본주의 가치관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계속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진이 나면 '땅 조차 믿을 수 없고 안전하지 않구나~~! 난 무엇을 믿어야한단 말인가~ 의 방향을 바라 봐야합니다. 그 길에 오직 예수님만 서 계시죠.)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모든 사람을 내쫓으시며'라는 뜻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옛자아 즉,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나'를 내쫓으십니다. 즉, 거듭난 나와 옛자아를 분리시키서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하십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얼마나 무능력한가? 얼마나 무가치한가?'를 알게 하셔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시죠.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님의 시스템이 바로 '타인'입니다. 타인은 나를 객관화하여, 즉 분리하여 놓은 또 다른 나입니다. 타인을 보면서 나의 죄를 볼 수 있게 하나님이 만든 시스템이죠. 즉, 타인은 일종의 거울입니다. 그래서 타인을 비판하는 것은 '나는 저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이므로 거울을 보면서 '이건 내가 아니야! 저놈은 강간범이고 나는 착한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격이 됩니다. 그래서 짐승보다 못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을 볼 때 욕을 하시면서도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나 혹은 나를 포함한 인간전체여야 합니다.
'돈 바꾸는 사람과 비둘기 파는 사람'을 쫓아 내셨죠. 이것은 우리 안의 인본주의 종교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돈 바꾸는 것은 교회 제도에 관한 것이고 비둘기 파는 것은 제물에 관한 것이죠. 즉, 교회의 제도와 헌금에 관련된 것을 다 쫓아 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뜻하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여기서의 집은 교회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집은 선택된 자, 그 자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 혹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주체일 뿐입니다.
"롬8:26하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리라."
그러니까 오늘의 말씀을 조금 재미있게 말해보면, 예수님이 기도하러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는데 우리 안쪽이 강도의 소굴처럼 되어 있어서 예수님이(성령께서) 전부 다 청소하시고 우리 안에서 기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끝.
P.S 매주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그냥 살아가시다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눈에 들어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해 주세요.(그러나 이 뜻은 '아무 때나 무조건‘ 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도 행위로 파악하여 책임감에 어깨가 짖 눌리신 분들이 많죠. 이 말은 "전도는 인본주의를 고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전도는 설득이 아닙니다.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의 모습은 매우 동일합니다. 길을 잃어 버려서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한 상태죠. 즉,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고 애통한 상태에 놓여 있죠.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복된 모습'입니다. 복음(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 버립니다.
주위에 이런 분들이 눈에 들어 온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반대로 마음이 부유한 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마음이 부유한 자들이란 사회에서, 교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쌓아가는 자들입니다.(물론 그들 중에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가난함을 인식하는 자들도 있겠죠) 그들에게 그 가치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가치만을 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예수님의 가치가 충돌하죠.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님을 살인(부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여러분을 박해(오해)하죠.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살벌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 즉, 가족입니다.
오직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글을 권해주세요.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그 날을 생각해 보세요^^
주말은 묵상이 없습니다. 친구, 가족과 재미있게 잘 보내시고 다니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도록 기도하세요. 재미있게도 눈을 뜬 자들은 어떠한 이단목사의 설교를 통해서도 복음으로 가공해서 해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들의 행위는 본 받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은 잘 지켜라 ” 어떤한 기독교 이단이라도 성경말씀을 전파하는 통로로 하나님은 사용합니다. 이 말은 어떠한 정통교회 목사라도 이단적 발언은 항상 존재한다는 말이죠. (저를 포함해서 모든 가리키는 손가락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말씀이 가리키는 목표인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