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유대의 계대혼인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이 혼인법은 정확히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어쩌면 어긋난 관계적 설정을 한 것입니다. 형의 형수와 동침을 하는 것, 다른 사회에서는 비판받죠. 그래서 성경은 인본주의적 눈으로 해석을 할 때 모순되는 곳이 많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논리적이냐? 아니냐? 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설명하는데 기여하느냐? 아니냐? 만 따지죠.
계대혼인법의 핵심은 상속자의 중요성에 관하여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죠. 상속자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중요성은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끊어질 수 없고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굳이 일곱째 까지 라는 표현을 한 이유는 7이 천국, 즉 복음에 관한 숫자 이므로 '이 이야기는 복음에 관한 이야기란다.'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제도 지키기'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곧 율법이 가리키는 진리는 보지는 못하고 율법 자체에 묶여 있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인생을 통하여 복음을 알 수 있도록 하셨는데 우리는 인본주의에 머물러 있는 죄를 짓고 있죠. 예수님은 이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 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라는 말이 성경에 매우 빈번하게 나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전부 예수님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상징적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오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죠. 죽은 자는 우리요. 살아 있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라는 것은 상징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완벽하게 죽은 자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육, 혼, 영 세가지가 존재한다고 나옵니다. 육이란 지금의 '나' 전부를 가리킵니다. 몸 뿐 아니라 생각(뇌)과 마음(느낌)도 전부 육입니다. 혼이란 바로 육체와 연결된 생명을 가리킵니다. 육체가 죽으면 혼이 떠난다라는 말은 사실인 셈이죠. 육과 혼은 사람 뿐 아니라 짐승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영'은 오직 사람에게만 존재했었습니다. 즉, 영은 바로 '성령'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의 호흡을 인간에게 넣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표현'되어 있죠. 이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인간에게 들어온 '성령'을 뜻합니다.
이렇게 성령이 인간에게 들어 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한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준 또한 인간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같았죠. 그런데 선악과 에피소드에서 보듯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기준,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 이로움과 해로움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지경까지 떨어졌죠. 즉 인본주의로 돌아섰죠. 이 때 인간은 모두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지금의 인간은 그냥 똑똑한 짐승일 뿐입니다. (치타는 다리가 뛰어난 짐승, 사람은 뇌가 뛰어난 짐승)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해서 죽은 자 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으로 오직 한 분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세상과 죽음을 십자가로 이기시고 부활을 하셨죠. 이 스토리를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는 스스로 살아 있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살아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죠 "왜? 이렇게 나는 이 천국에서 영원히 예수님의 품에만 있어야 하는 거야?? 나도 좀 자유롭게 예수님의 품에서 벗어나서 돌아다니면 안되나??? "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죠.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 바로 천지창조와 온 우주의 역사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입니다. 예수님과 분리되어 사는 것이 곧 죽은 것이고 죽은 것으로 사는 인생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죠. 물론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알려주시죠.
그래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영적 세상에서는 의미론적으로 천국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천국백성이 되었고 왜 예수님의 품에서 벗어나서 살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천지창조와 그 후의 모든 역사는 의미론적으로 나중인 셈이죠.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선택받은 자들은 이미 태초에 결정되어 있다'라는 개념입니다. 이 장대한 무대에 여러분은 80년 정도 잠시 등장하여 이 복음을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짧은 연극 무대 한편 보시고 퇴장하는 것입니다. ) 이렇게 내가 선택은 받은 자인가? 아닌가? 는 복음을 알아듣는가? 아닌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선택받지 않은 가짜 크리스찬들도 자신이 성경을 잘 알아듣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참 선택은 하나님만 아시죠. 어렵죠? )
" 요10:26-28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끝.
'마태복음(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22:41-46(22.01.28.금) (0) | 2022.01.28 |
---|---|
마22:33-40(22.01.27.목) (0) | 2022.01.27 |
마22:15-22(22.01.25.화) (0) | 2022.01.25 |
마22:1-14(22.01.24.월) (0) | 2022.01.24 |
마21:42-46(22.01.21.금) (0) | 202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