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인자의 임함'은 두가지 상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완전히 끝나는 '세상 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겠죠. 그러나 이것이 실체가 아닙니다. 이 세상끝이 진짜 종말이자 실체처럼 생각이 들겠지만 이것은 실체에 딸려오는 그림자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진짜 이런 종말이 일어나겠죠. 그러나 '세상 끝'은 이 세상이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상징일 뿐입니다. 진짜 실체는 바로 이 시간 개개인의 인생 속에서 벌어지는 심판이 그 실체입니다.
'그 날은 아버지만 아신다'라고 하죠. 이 세상 끝의 정확한 시간은 하나님만 아신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말씀의 본질은 개인의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즉, '내가 (언제) 구원을 받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교회 정집사님은 인격이 휼륭하니까 구원받았을꺼야, 김집사님은 헌금, 봉사를 잘하니 구원받았을 꺼야,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으니 구원받았을 꺼야. 그러나 최집사님은 교회도 안나오고 매일 술만 먹고 살고 있으니 구원받지 못했을 꺼야. 이런 식의 생각은 잘못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다윗을 생각해보죠. 다윗은 구원을 받았다는 합리적 추측을 해 볼 수 있죠. 그런데 다윗이 밧세바를 강간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속이고 죽인 역사의 그 순간에 내가 투입이 되어 그를 판단한다고 생각해 보면 살인, 강간, 거짓말, 남의여자도둑질, 탐욕을 한번에 다 저지른 그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절대 없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역사를 사용하셔서 성경을 쓰셨고 간음에 동조한 밧세바를 통해 예수님의 상징인 솔로몬을 낳게 하셨고 그 자손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게 하셨죠. 이게 인간의 선악 개념으로 이해가 되나요? 인간의 구원관은 왜 하나님과 다를까?
그럼 누가 구원을 받는가? 이것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한 것이 '노아의 방주 사건'이죠. 홍수 이전이라는 뜻은 모든 인간이 인본주의 아래 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인본주의 삶을 오늘의 말씀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계신지 알면 매우 심각해집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라고 표현하죠. 이것은 우리 인본주의 세상에서 죄라고 여기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 매여 있었기 때문에 죄가 된 것이죠. 이것을 위해 사는 자들! 인본주의 행복을 위해 사는 자들! 인본주의는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그 용도는 그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찾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고 애써야 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구원받은 자들이 그것을 찾아가게끔 인도하시는 것이죠. 이 두 차이가 현실적으로는 없습니다.(즉, 본인이 구분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인본주의적으로는 이 두 차이를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을 표현한 것이 그 다음 두 구절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한 사람만 구원받고, 두 여자가 맷돌질 하다가 한사람만 구원받는다고 하죠. 이 글의 참 요지는 두사람의 행위와 노력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행위와 노력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와 노력의 가치가 '0'에 수렴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데려감의 주체는 '아버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노아의 방주로 가보죠. 이때 결국 노아의 방주 밑에 있던, 물 아래 있는 사람은 다 죽죠. 그런데 오직 노아만 살았습니다. 노아는 예수님의 상징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가 선택되었나?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만 아시죠. 그리고 '노아를 예수님의 상징으로 선택을 했다'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노아는 의인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저 사람은 '의인이다.'라는 말이 가끔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그 사람의 행위가 진짜 의롭다는 말이 아니라 이 사람을 통해 예수님을 일부를 설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진짜 인간 노아로써의 실체는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술먹고 바닥에서 하체를 다 드러내고 자빠져 자고 자신의 그 모습을 보고 조금 비판한 자식 '함'을 저주한 못난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예수님의 상징이죠.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노아도 아닌데 죽음을 면한 자들이 있습니다. 노아의 식구입니다. 정확하게는 노아의 신부와 노아의 자식들이죠. 이것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신부, 자식이 되어 구원을 받게 되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지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신부와 자식이 되는 것만이 구원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