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24:28-35(22.02.22.화)

은혜바라기 2022. 2. 22. 08:4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종말의 말씀은 앞으로 올 미래의 이야기가 촛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 세상이 끝나는 날은 있겠죠. 그러나 그것 조차도 실체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 합니다. 즉, 실체는 따로 있고 그 실체에 대한 종말의 말씀 때문에 '자연'이 이 종말론적 말씀에 순응해서 이 세상의 끝 날을 만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성입니다. ( 그래서 세상 끝 날을 대비하는 목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바보'같은 것이 됩니다. - 어렵나요? 예를 들어 볼까요? 컴퓨터를 끄는 목적은 모든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것이 목적이자 실체인데 컴퓨터를 끄면 화면이 '검정색'으로 변화는 것을 목적으로 '난 검은색 화면이 목적이야~~' 라는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종말의 진정한 실체는 선택된 자들의 인생 그 자체입니다.  그리하여 뒤쪽에 이런 말씀을 하시죠.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라고 하시고 '천지는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하며 분명히 일어날 것임을 이야기하시죠. 여기서 '이 세대'란  지금 각자 살아가는 우리 인생을 말합니다. 물론 이 세대가 그 당시 초대교회를 가리키기도 하죠. 그러나 그 초대교회도 결국 실체에 대한 그림자일 뿐입니다. 실체는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인생 전체 입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이 뜻이 매우 어렵습니다. 얼핏 보면 ' 죽은 죄인들에게 독수리가 와서 쪼아 먹는 심판이 올 것이다'의 뜻 같지만 이것은 인간의 자연 관찰이라는 직, 간접 경험 때문이죠. 그렇다면 과연 이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 전의 문장이 '번개 같이 인자가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의 요지는 '우리가 예수님을 쫓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어제 묵상을 했다면 아시겠죠. 이 말씀 다음에 오늘의 말씀인 '주검과 독수리'가 나왔죠. 그러므로 주검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를 뜻합니다. 혹은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를 뜻합니다. 당연히 독수리들은 교회를 뜻합니다. 그래서 주검은 단수로, 독수리들은 복수로 말씀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결국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그 전의 말씀의 요지와 붙여서 해석을 해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를 쫓을 수가 없다. 그러나 걱정 말아라 선택된 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곁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 다음절인 31절에 보면 ' 택한 자를 사방에서 모으리라' 라는 말씀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 후에 해, 달, 별, 하늘이 흔들린다고 하죠. 예수님이 십자가 환난을 당하시고 비슷한 일이 일시적으로 생겼죠.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실체는 우리의 인생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즉 선택된 자들은 당연히 이런 환난을 받을 것인데, 이 환난을 받게 되면 벌어지는 일들을 말합니다. 무엇일까요? 해, 달, 별, 하늘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것은 인본주의에서 보는 자연의 최고 가치죠. 즉, 해와 달이 빛을 내는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별은 절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하늘은 절대 흔들리지 않죠. 그런데 빛이 어두어 지고, 별이 떨어지고, 하늘이 흔들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인본주의 최고 가치를 흔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조금 쉽게 설명을 드릴께요. 

 우리가 주님에 의해 믿음을 가지게 되면(복음을 알게 되면) 우리의 인생가치관이 완전히 바뀝니다. 그 전의 인생이 '행복하기' '잘살기' '휼륭한 사람되기'가 목적이었다면 믿음 후에는 '복음을 이해하는 삶'으로 목적이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은 당연히 인본주의(선악구조) 자체를 죄로 여기고 그것으로 부터 분리되어 예수님의 지체로 들어가 있는 나를 인식하는 것을 뜻하죠. 그러니 이 때부터는 인본주의에서 환난이라는 것을 당하게 되죠. 즉, 우리가 믿었던 인본주의 핵심으로 부터 돌아서게 됩니다. 정확하게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인본주의 핵심에서 떨어지게 만듭니다. 우리가 믿었던 행복, 자식, 돈, 지위, 명예, 인기의 무가치함을 알게 하시죠.  '우리가 믿었던 인본주의 핵심을 무가치로 겪게 만드심' 이것을 '해, 달, 별, 하늘이 흔들린다'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보면, 나를 더 잘 살게 해줄거라고 생각했던 인물을 뽑아 대통령으로 세워놔도 결국 감옥에 가는 인생으로 결론이 나고 영원할 것 같은 그 많던 제국들이 결국은 다 무너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최고(해, 달, 별, 하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흔드시면서 인간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죠.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땅의 모든 족속이 통곡하며 그 분을 볼 것이라고 하죠. 인자의 징조는 성령강림을 뜻하죠. 초대교회에서 성령께서 처음 나타나신 것은 성경의 기록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직접 나타나셨죠. '불의 혀'의 모습으로 나타 나셨죠. '불'이란 변화와 정화를 뜻하고 '혀'란 성령이 곧 말씀이라는 것을 뜻하죠.  오늘 말씀의 요지는, 성령께서 오시면 그 때서야 땅의 모든 족속이 예수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예수님의 능력과 영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라고 해서 우리가 예배당에서 불로, 불로, 불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을 잘못 해석하여 벌어진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신자들이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성령께서 오시더라. 이것을 본따 만든 인본주의 행사입니다. 이것을 따라서 저녁마다 혹은 새벽마다 모여 불로 불로 기도하죠. 이것을 맹인이 맹인을 이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120명에게 절대 기도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배, 봉사, 헌금, 찬양 등등 그 무엇도 하라고 하신 것이 없습니다. 딱 하나 요구하신 것이 '기다리라' 입니다. 인간이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여 '기도라도 하고 있자'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 정도로 인간은 구원에 대하여 자신의 행위를 한 숫가락이라도 얹으려는 노력을 하죠. 

 그래서 성령강림 직전에 새로운 사도 뽑기 '맛디아 사건'이 나온 것입니다. 하필 성령강림 직전에 이 에피소드가 기록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해도 성령께서 내재하지 않으시면 결국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일부러 성령강림 직전에 이 맛디아 뽑기 에피소드가 소개되죠. 

 다 아시겠지만 베드로가 갑자가 일어나서 '가롯유다가 죽었으니 우리가 사도를 한명 뽑자'라고 외치죠. 그리고 그것을 제비뽑기를 해서 뽑아 냅니다. 현대교회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구나' 라고 해석해서 12월31일만 되면 말씀뽑기를 하죠. 심지어 노회장도 뽑기로 뽑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성령께서 오시지 않을 때의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 맛디아는 그 뒤로 성경에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롯유다를 대신할 12번째 사도를 예수님이 직접 뽑으시죠. 누구죠?  바울입니다. 이 바울을 직접 뽑으심으로 다시 한번 맛디아 에피소드는 엉터리였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이죠.

 

 인간은 그가 예수님을 위해, 구원에 일조하기 위해 그 무엇을 하던 전부 하나님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3살짜리 어린아이가 엄마를 돕는다고 칼들고 주방에서 난리치는 것을 쳐다보는 엄마의 심정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죽은 피조물의 격차는 이것보다 더 큽니다. 심지어 주방일과 구원사역의 격차는 훨씬 더 크죠. 인간은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죠.-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입니다.)

 

 "시46:8-11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이 시편의 말씀을 잘 묵상해보세요. 심지어 전쟁중에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죠.(여기서의 전쟁은 사실 - 영적전쟁- 을 가리킵니다. 즉, 지금 우리의 구원사역을 말하죠.)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방향성은 바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품에 들어가 그곳을 피난처 삼아 평강을 누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게 쉽게 보여도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죠. 즉,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멋진 그림을 그리려고 하죠. 그러나 진짜 인생의 목적은 '내가 이것 조차 할 수 없는 자로구나~~~'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끝. 

'마태복음(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24:42-51(22.02.24.목)  (0) 2022.02.24
마24:36-41(22.02.23.수)  (0) 2022.02.23
마24:23-27(22.02.21.월)  (0) 2022.02.21
마24:19-22(22.02.18.금)  (0) 2022.02.18
마24:15-18(22.02.17.목)  (0) 202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