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종말장인 24장을 이야기하시고 결론이 '깨어 있으라' 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25장에서 3가지 비유를 하셨죠. 열처녀비유, 달란트비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인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깨어 있으라'의 의미는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양과 염소를 결정하시고, 예정하신 것에 대한능동적 표현일 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 분의 양들을 '깨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보면 이미 인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고 있죠. 오른편이란 성경에서 '올바른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천국을 가리키죠. 왼쪽은 올바른 방향과 반대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지옥을 가리키죠. 그리고 이들의 행태를 이야기하십니다.
양들에게는 '내가 힘들 때 너희는 나를 돌보아 주었다.'라고 하니 양들의 대답이 '언제 제가 주님을 돌보아 주었습니까? ( 나는 그런적이 없습니다. )' 라고 하고, 염소에게는 '내가 힘들 때 너희는 나를 외면했다' 라고 하니 염소들의 대답은 '우리가 언제 주님을 외면했습니까?(나는 주님을 외면한 적이 없다.)' 라고 하죠. 이 대화의 1차적 핵심 키워드는 '답변'입니다. 즉, 양들은 자기가 예수님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염소는 자기가 예수님께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즉, 인본주의 종교인들입니다. 예배, 봉사, 헌금, 기도의 노력을 통해 내가 주님께 마음과 정성을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염소라고 정의해 놓고 그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형식의 글이죠.
그리고 2차 핵심 키워드는 주님의 '질문'입니다. 즉, 아무것도 안 한 양들에게 는 '너희는 나를 도와 주었다'라고 하시죠. 그리고 자신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는 염소들에게는 '너희는 나를 외면했다'라고 하셨죠. 여기서도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양들은 원래는 많은 노력을 했는데, 너무 겸손해서 아무것도 안했다고 답변을 했고 그것을 좋게 본 주님이, 역시! 너는 너무 착하구나. 사실 너는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잖니~~'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완벽한 바리새인, 인본주의적 종교해석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종교, 심지어 TV 드라마에서도 가장 최고의 인간형태로 꼽는 착한 사람이죠. 인본주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박수쳐 줄 만한 사람이죠. 그러나 이 구조가 선악과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모르죠.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이러한 인본주의 구조에서 자유롭기란 불가능하죠.
이 글의 결론으로 먼저 가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죠. 이 결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잘 이해하셔야합니다. 일단 인본주의 종교인들의 해석을 생각해 보죠. 그들은 이 글을 '세상에서 힘 없고 약한 자들을 잘 돌보지 아니하면 그것은 주님께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약한 자들을 도와줘라! ' 라고 해석하겠죠.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있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모든 공통된 인본주의 최고의 가치이죠. 이 말씀의 본질은 이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이 말씀의 본질을 풀어보죠.
일단 '지극히 작은 자'는 예수님입니다. '작다'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인 된 인간의 몸으로 온 것은 상대적으로 가장 작은 자로 오신 것이죠. 그래서 작은 자 앞에 '지극히'라고 강조문구를 일부러 넣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해석하면 '지극히 작은 자로 오신 예수님께 (그 무엇을) 하지 아니한 것이 하나님께 하지 아니한 것'이 됩니다. 고로 예수님께 무엇을 하긴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한 것이 되죠. 그럼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할 까요? 그것이 바로 좀 전에 설명한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렵죠? 만만치가 않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부분을 매우 자세히 말씀해 주신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것을 조금 묵상해 풀어보죠.
" 요한복음 6장 28,29절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우리가 할 일이 정확히 나와 있죠? 우리의 할 일은 단 한가지 '예수님을 믿는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이 할 유일한 일입니다. 이것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드릴께요. 염소는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본다고 봉사, 기도, 헌금, 기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의 능력과 열심을 믿는 것이 되죠. 즉,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나를 도와 주지 않았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양은 자기가 봉사, 기도, 헌금, 기부를 하더라도 그 행위을 통하여 오히려 그것들의 무가치함을 알게 되요. 즉, '이런 것들은 모두 진짜를 설명하는 그림자일 뿐이구나.'를 알게 되죠. 그래서 이 모든 것의 진짜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두 이루심'만을 소망하게 되요. 그 때서야 비로서 요한복음6장29절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양입니까? 염소입니까? 이 대답을 '양 입니다.' 라고 하면 오늘 말씀의 논리상 '염소'가 되는 것이고, '염소'라고 대답을 하면 '양'이 되는 것이죠. 그럼 이 사실을 알았으니 나는 '염소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면 '양이 되겠지' 하고 '염소'라고 대답을 하면 과연 '양'이 될까요? 결국 의미없는 쳇바퀴죠! 그 이유를 아시나요?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 선악구조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죄라고 하죠. 그래서 결국 '예수님밖에 없구나!' 의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을 '참 복음'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깊에 들어가보죠. 양처럼 '나는 무가치하다' 라고 선언하면 내가 진짜 양인 될꺼라고 생각하는 자가 염소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다 '염소'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진짜 양이죠. 그런데 이렇게 아는 자들은 자신이 '염소'라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너무 어렵죠? 그러나 이 고민을 하셔야 합니다. 이 끝에 진짜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끝에 있는 진짜 참 진리는 '진짜 양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흠없는 어린 양으로 오셔서 나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 어렵지만 오늘의 본문 자체가 이 쳇바퀴 싸움입니다. ---
끝.
(( 요즘 대선이 한참이죠!! 여러분이 선택받은 분들이라면 이 모든 환경 또한 복음을 해석하는 도구로 보셔야 합니다. 정치는 완벽하게 인본주의 바벨탑의 꼭대기를 누가 찾이하는가?의 성인 놀이터입니다. 이 놀이터에서 편 나누고 그 놀이에 빠져 인본주의 시스템에 흡수되지 마시고 이 대선과 정치에서 한발 떨어져서 그들의 모습과 행태에서 하나님께서 과연 복음의 무엇을 설명하시는가?를 고민하고 묵상하세요. --- 유대인들이 자기들도 왕을 달라고, 대통령을 달라고 보채고 구걸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정말 심란했습니다. ' 나만을 보면서 사는 것이 너희에게 좋다. 왕은 너희에게 오히려 나쁜 제도다. 왜 신본주의에서 벗어나 인본주의 속 왕정으로 가려느냐? 왜 그것에 매달리고 열광하느냐? ' 고 하셨죠.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이 이어코 꺽어서 왕을 만들어 내었죠. (사실 이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인해 왕되신 예수님을 복음으로 설명하려는 섭리 속에 들어 있긴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인본주의 홍수로 쓸려 죽어 나갈 때 '복음의 방주'에 오르시길 기원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서도 하나님께서 복음의 그 무엇을 설명하시는가를 고민하고 묵상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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