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25:14-30(22.02.28.월)

은혜바라기 2022. 2. 28. 09:22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오늘 말씀을 가지고 인본주의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먼저 확인하고 가보죠. 그들은 이 '달라트'를 재능이라고 가르치고 하나님이 주신 이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 많은 곱절의 충성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더 천박해지면 하나님이 주신 재산을 더 많이 불려서 충성하라고 가르치기도 하죠.)

 

 그러나 '달란트'가 가리키는 것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예수님'이기도 하죠. 즉, 1, 2, 3번 사람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1, 2번은 그 말씀을 가지고 그 본질인 복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3번은 그 말씀을 가지고 그 문자로만 이해하는 자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말한 인본주의 종교인에 해당 되죠. 

 

 다른 측면으로 말씀드리면, 1,2번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 분의 진정한 정체성, 십자가의 진정한 실체를 알게 되었다는 말이고 3번은 예수님을 그냥 '종교' '신' '그냥 십자가'로만 보는 자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 말씀드리면, 1,2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주셨는데 그 인생을 통해 복음을 깨달아서 또 다른 인생인 천국을 남겼다는 말이고 3번은 오직 인생에만 묶여 산 자라는 말입니다. 이 촛점을 잘 이해하시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묵상을 해보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시죠. 그리고 그 종들을 나두고 타국에 갔다는 말은 그 종들과 분리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우리는 '죄인'라고 하죠. 그런데 이들에게 소유를 맡겼다고 하죠. 하나님의 소유란 '말씀' 밖에 없습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말씀이죠. 약간 확대하면 달란트는 '인생전부 혹은 말씀의 섭리 속 인생전부'를 뜻하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을 주셨고 그 인생을 통하여 예수님을 남겨야한다고 해석을 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1, 2, 3번에게 그 각각의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셨다고 하죠. 1, 2, 3번에게 각각의 상황(인생)에 따라 말씀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구약만을,  어떤 이에게는 신약 전부를, 어떤 이에게는 독립된 말씀을, 이런식으로 그 사람의 각각의 시대와 환경에 마추어 그 사람의 인생에 말씀을 주셨다는 이야기 입니다. 

 마지막 사람에 대한 묵상을 조금 해보죠. 어떤 기독교인이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을 자기의 사무실에 걸어 놓고 인생 내내 돈만 벌다가 부자가 된 후 죽었다고 해보죠. 이 사람은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찾아내지 못한 채 이 세상의 '잘살기 인생'에 묶여 버린 형태로 죽었죠. 심판입니다. 

 특히 24, 25절의 말씀을 잘 해석해야합니다. '굳은'이란 '한결같은' 이란 뜻이죠. '헤치다'는 '뿌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24절은 나는 '하나님이 한결같이 심지 않고 거두고 뿌리지 않고 모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죠. 그래도 모르겠죠. 이게 무슨 말일까? 그 다음 구절에 보면 '내가 두려워'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연결해보죠 '하나님은 심지도 않고 거두기를 원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두려워' 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잘못 생각하고 있는 인본주의 종교인으로 나온 한 달란트를 가진 자의 생각이죠. 그럼 해석은 어떻게 될까요?  어렵습니다. 잘 따라오세요

  3번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여, 즉 하나님의 깊은 의도를 알지 못하여 말씀을 통해 그 본질인 예수님을 남기는(찾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땅이라는 '인생'에 말씀을 묶어서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즉 보이는 글자 그대로 지켜만 내는(keep) 자로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조금 어렵죠? 예를 들어 볼까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오늘의 비유를 풀어보죠. 1, 2번의 사람은 이 말씀을 가지고 인생에 적용시켜 보니(장사하니) 도저히 인간은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서 이 말씀의 진정한 본질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원수된 나를 사랑한 것을 표현한 말씀'이라는 '복음'을 알게 되어 (장사하여 남기다.) 천국을 갈 수 있게 되죠.(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

 

 그런데 3번 사람은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의 방식(땅에 묻어 두는 것 = 인본주의 방식 = 인간의 기준)으로 풀어서 원수를 사랑합니다. 교회에서 원수처럼 미운 집사에게 도저히 먼저 인사하기 싫은 것을 참고 참아 가면서 고개를 먼저 숙이고 인사하면서 '난 드디어 이 말씀을 지켰다.' 는 고백을 하나님께 내어 놓죠. 

 

 하나님은 인본주의자들의 열심과 노력을 '땅에 감춘다'로 보신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땅은 티끌입니다. 무가치함을 뜻하죠. 그리고 인본주의를 뜻합니다. 즉, 이러한 노력은 '복음'이라는 이익을 얻지 못하면 모두 무가치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한 달란트 받은 자를 심판하죠.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차라리 돈놀이하는 자들에게 내 돈을 맡겨 원금과 이자라도 받지'라고 하죠. 하나님께서 갑자기 매우 부적절한 말씀을 하시죠. 그래서 복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면 절대 말씀 해석이 안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너희가 어떠한 노력과 행위을 하더라도 그것은 전부 땅에 감추는 것일 뿐이니 너가 노력하지 말고 그것을 외부에서 찾지 그랬니?' 라는 뜻입니다. 정말 이상한 말로 들리겠지만 여기서 돈놀이하는 자들이란 성부, 성자, 성령을 뜻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석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본주의적 선악구조에서는 이 돈놀이를 '죄'로 인식하죠. 그러니 이것을 하나님과 연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무엇이든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용된 것을 '의'롭다고 하시죠. 

 

 조금 다른 방향으로 결론을 내보죠. 1, 2번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1, 2번은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즉, 오직 예수님만이 이 땅에 오셔서 그 분의 달란트(능력)로 복음을 남기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심판 받은 3번이 바로 '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힌트를 주시죠. 즉, '너의 힘으로는 원래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이므로 외부의 힘, 즉 성령께서 해 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달란트를 받아 장사를 통해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인데 인간은 이것을 자신이 하려고 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두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심판받는 자들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에서 벗어나는 단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그 자신이 이익을 남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외부 돈놀이 하는 자, 즉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그 분이 나를 대신해서 이익, 즉 복음을 알게 하여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비유는 두,세 단계를 거쳐야 본질을 알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렵죠? 이렇게 우리는 여리고성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빙빙 돌기만 하면서 복음을 배우고 아이성에서는 내가 뭔가 해보려고 하다가 실패해서 주저 앉으면서 복음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선택하셔도 됩니다. 즉, 나는 하나님께서 바이올린 이라는 달란트(재능)을 주셨고 그 달란트로 교회에서 열심히 성가대를 위해 봉사하고 있으니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받았다고 목사님이 설교를 통해 위로 해 주고 있다는 선택을 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심판은 오직 예수님의 몫이라는 것이죠. 무서우시죠? 맞습니다. 무서우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나온것입니다.

 

"빌2: 12하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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