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완료)

약1:1-11(22.03.29.화)

은혜바라기 2022. 3. 29. 08:37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열두 지파에서 '12'라는 숫자는 교회를 말합니다. 물론 지상교회가 아닌 선택된 자들의 모임,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을 말하죠. (4라는 땅에서 3이라는 복음(하나님=예수님)을 알게 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4*3=12)

 시험과 시련이 인내를 온전히 만들게 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인내의 뜻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은 절대 이 세상의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잘 참고 사는 것을 인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내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오직 복음으로만 해석하는 자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을 너무 쉽게 잘 살게 되면 이 세상에 묶여 오직 ‘잘살기’만을 쌓아가기 때문에 복음의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죠. 그러나 시험과 시련을 받게 되면 이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나의 비참함을 다시 돌아보게 되면서 다시 복음을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되어 있죠. 그래서 오늘의 말씀에서 보면 ‘삶의 시련’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의 시련’이라고 하신 것이죠.

 이렇게 시련이 올 때 이 세상에 묶여 있던 시선을 복음으로 옮기는 것은 깊은 묵상 속에서 참 지혜가 흘러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구절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혜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고 하시죠. 참 믿음은 의심이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참 믿음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종의 마음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복음의 발견’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참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주어진 표지판일 뿐입니다. 조금 쉽게 예를 들어 볼까요?

 어떤 한 여자가 애인으로 부터 조그마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고 생각을 해보죠. 그 여자는 그 조그마한 상자에 '프로포즈 반지'가 들어 있다고 믿을 수가 있겠죠. 그러나 그것을 열어보니 실제로는 '이별편지'가 꾸깃 꾸깃 들어있을 수도 있죠. 이 여자가 이 조그마한 상자를 받고 반지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마음 상태를 보통 이 세상에서는 믿음(상징적 믿음)이라고 칭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죠. 

 

 그러나 이 여자가 조그마한 상자를 열어보니 '확실하게 이쁜 반지'가 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해보죠. 그리고 그 반지 상자를 가방에 넣고 거리를 돌아가니게 되면 하루 종일 싱글 벙글 웃을 수 있겠죠. 이 때 이 여자가 웃는 이유는 확실하게 가방 안에 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의 이 '앎'이 바로 참믿음의 실체입니다.

 

 즉, 믿음의 참 실체는 여자의 생각이 아니라 애인(예수님 or 성령님)이 조그마한 상자를 열어서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여자는 오직 눈을 뜨고 그것을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 '깨어 있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 복음을 알게 되는 것 =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자들은 절대 '참 믿음'을 알 수가 없죠. 성령께서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복음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직접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인본주의 논리 속에서 흔들리죠.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이어 가십니다. 

 인본주의에 묶여서 그 논리로 복음을 이해하는 자들은 ‘바람에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하죠. 이런 사람은 주님께 무엇이든지 얻기를 생각 말라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때 ‘무엇이든지’라는 뜻은 ‘가치있는 무엇이든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들어 온 자들은 모든 가치가 복음 뿐이기 때문에 ‘가치있는 무엇이든지’는 오직 복음(혹은 그 복음을 알려주시는 성령)을 뜻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자들의 바램은 복음을 구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인본주의에서 ‘잘 살기’를 바라는 것과 혼용해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그 다음 구절이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쓰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인본주의 규칙과 반대되는 말씀이 바로 나옵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본주의 규칙과 정 반대의 말을 하시므로 하나님은 인본주의 규칙을 부정하고 계시는 것이죠. 즉, 인본주의와 완벽하게 반대로 가는 방향성이 바로 복음의 방향성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완벽하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고 이 땅의 죄인의 먹이(말 구유에서 태어나심)로 오신 것은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자로 오신 것이죠. 그래서 그 분은 가장 높아 지셨고 그래서 그 분은 높음을 자랑(영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인본주의 논리에 묶여 있는 자들은 이 말씀도 '그래~~ 더 낮아지자~~ 그래야 높아진다.~~'라고 마음 먹으면서 '겸손이라는 처세술'을 교회에서 펼치죠. 그리고 서로 서로 그런 사람을 칭찬합니다. 복음이라는 반지를 정확하게 보지 못한 자들이 이런 인본주의 종교의 환경에서 스스로 깨달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하십시오. )

 우리가 행하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로 오셔서 다 이루셨고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됨(믿음)으로 그것에 참여한 자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3단계 복음논법을 아애 공식으로 머리에 넣어 두세요. 1단계-우리에게 주신 말씀  2단계 – 우리는 절대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됨(비참한 죄인의 상태, 죽은 자의 상태)  3단계 – 예수님이 그것을 다 지켜 내셨고 못 지켜낸 우리의 댓가(십자가)까지 짊어 지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믿음) 우리가 그것을 지켜 낸 것으로 인정받게 됨(복된 소식-복음)  이 3단계 복음논법이 앞으로 계속 성경 해석의 기초가 되어 묵상을 하게 됩니다. )

 그러나 부한 자, 즉 인본주의 바벨탑의 꼭대기의 삶은 바로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간다’라고 반복하여 규정합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그 인본주의에 대한 실체를 연이어 고발하고 계십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일정 기간 동안은 행복하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영적 세상에서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정확하게 단 1초의 순간도 NOTHING(무가치)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무가치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야 모든 소망이 예수님께 향하게 되죠. 

 

'야고보서(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1:21(22.04.04.월)  (0) 2022.04.04
약1:19-20(22.04.01.금)  (0) 2022.04.01
약1:16-18(22.03.31.목)  (0) 2022.03.31
약1:12-15(22.03.30.수)  (0) 2022.03.30
야고보서 서론 (22.03.28.월)  (0) 2022.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