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는 당연히 인본주의 혹은 인본주의 종교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서신서의 대 주제입니다. 우리는 서신서를 묵상하면서 서신서가 왜 작성이 되었는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서신서는 선택받은 자들이 이 땅에 살면서 계속 인본주의라는 누룩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경계시키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즉, 복음과 인본주의를 분리시키는 것이죠. 이것을 '거룩'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사전에서 '거룩'의 뜻을 찾으면 '분리시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벧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래서 이 말씀은 주님은 '고결하고 위대하니' 너희도 주님과 같이 '고결하고 위대해져라'는 말이 아니라 주님은 인본주의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곳에 있으니 너희도 인본주의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복음에 거하라는 뜻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에서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오직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고 그 복음을 알려주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죠. 이 원칙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자신들의 ‘원함’에 따라 각각 다르게 생각을 하죠.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하는 10살 꼬마에게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자신의 기준대로 ‘로보트 장난감’으로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꼬마는 그것을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겠죠. 그러나 받는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주는 분의 기준대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 바로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입니다. 주님은 오직 복음으로만 직진하신다는 말입니다.
특히 ‘온갖 좋은 은사’를 잘 해석하셔야 앞으로 나올 서신서의 많은 은사에 대하여 올바른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좋은 은사는 무조건 복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방언은 복음의 속성 중 ‘선택된 자만 알아 듣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 당시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설명된 은사죠. 신유, 즉 병고침의 은사는 복음의 속성 중 ‘인본주의라는 병(죄)에서 고침받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 당시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설명된 은사죠. 이렇듯 모든 은사들은 그것을 통해 복음의 속성을 설명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이렇게 기적이라는 직접적인 도구도 사용하셔서 복음을 설명하셨지만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오직 성령을 통하여 성경을 해석하여 복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만 하셨죠. 그렇게 복음에 눈을 뜨게 되면 온 천하만물, 역사, 자연, 우주의 법칙들이 모두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바로 ‘온갖 좋은 은사’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복음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사실 복음 자체가 예수님이시죠. 그렇기 때문에 오직 온전하신 분인 예수님이 우리에게 유일한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선물’이라는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세기1:1부터 지금까지 오직 이것만을 계획하셨고 인류의 역사 내내 이것만을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변함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고 표현되는 말들이 있죠. 여기서 ‘빛들’이 바로 선택받은 자들 전부, 즉 교회를 뜻합니다. 복음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국한하여 오직 그들에게만 알려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단 한줄의 짦은 말씀에 복음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 다음 매우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복음을 이해하는 핵심은 바로 ‘내가 예수님의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즉, 이 말씀에서 나온 첫 열매는 정확하게 인자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자들을 가리키기도 하죠.
이 말씀을 조금 의역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첫 열매인 예수님의 지체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리의 말씀, 즉 성령이 가르치는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셨다.’라는 말씀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낳으시는 방법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대신 첫 열매가 되셨고 이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되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복음에 눈을 뜬다는 말은 바로 ‘내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지체=교회)’ 이죠. 그래서 내가 나를 부인해야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도 같이 못 박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이해하는 자를 뜻합니다. 물론 이것을 그냥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작은 고난을 통해 알려 주시지만 이 작은 고난 자체가 십자가는 아닙니다. 참 십자가를 알 수 있는 참 십자가의 그림자죠. 그래서 나의 작은 고난은 나의 십자가이기도 하지만 진짜 나의 십자가는 나의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참 십자가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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