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완료)

약2:1-5(22.04.07.목)

은혜바라기 2022. 4. 7. 08:43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내 형제들아’라고 칭한 것은 바로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와 동의문맥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다는 말은 '복음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복음을 알게 된 자들이 참 형제, 즉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뜻이죠. 성경은 이 ‘한 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형제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교회에서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한 몸'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 교회에서 '형제님~~'하며 부르는 것은 '나와 한몸이여~~' 라고 부르는 것이죠. )

 이 ‘한 몸’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아가서를 읽어 보세요. 어느 누구도 올바른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가서는 계속 시점이 나, 너, 우리로 왔다 갔다 이동하면서 쓰여졌기 때문에 도대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한다는 건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사랑한다는 건지 계속 헤깔립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을 상징한 솔로몬과 교회를 상징한 술람미 여인이 한 몸이라는 것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 되죠. 즉, 사랑의 속성은 나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인간만을 남자를 먼저 만든 후 그 남자의 몸에서 여자를 만들게 된 것이죠. 즉, 한몸에서 출발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가 한 이불 안에서 사랑을 나눌 때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도록 만드신 이유도 이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극치의 오르가즘 조차도 결국 예수님과 교회가 하나 될 때의 즐거움을 설명하려고 만든 도구일 뿐입니다. - 영적 세상의 것을 이 세상의 것으로 설명하려고 만든 하나님의 수 많은 도구 중 하나인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 말씀의 주제가 바로 ‘차별하지 말라’입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한몸’원리의 반대편에 선 행위죠. 왜 갑자기 ‘형제여~~’ 하다가 ‘차별’이라는 말씀이 나왔는지 알겠죠?

  인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차별’입니다. 인본주의의 기본 구조는 바벨탑의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계층으로 나누죠. 그래서 사람을 차별하고 그 계층을 나눕니다. 그리고 그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하거나(욕심) 그 위치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착한 사람들’이 나에게 손해를 끼칠 확률이 적기 때문입니다. 혹은 나에게 이익을 줄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사람은 참 착하다.’라고 하는 말은 복음적으로 칭찬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인본주의에 잘 길들여져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모든 사물과 질서 그리고 그 현상에 대하여 복음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다른 한 예를 들어보죠. ‘아름답다’의 정의가 뭘까요? 왜 사람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까요? 이것을 몇 천년 동안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 중에 ‘미학’이라는 영역입니다. 철학 중에 가장 오래 된 심도있는 학문이죠. 그리고 이것을 기술로 표현한 것이 바로 ‘미술(미학기술)’입니다. 그래서 거꾸로 미술작품을 보고 그것을 그린 사람이 생각하는 ‘미학’이라는 철학을 이해하게 되면 미술 비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람은 아름다움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를 파악할 수 있으면 미술 평론가가되는 것이죠. 그런데 몇 천년 동안 연구했던 이 ‘미학’의 주제인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뭘까?’의 답은 현재까지 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즉, 아름다움을 표현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는 모순에 빠져 있죠. 그런데 복음을 아는 여러분은 알고 계시죠.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그것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창세기 1장에서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도 하나님이 만든 것을 보면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복음에 눈을 뜬 사람들은 참 지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조금 다른 분야를 장황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바로 성경 뿐 아니라 모든 역사, 사물, 우주를 복음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차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주시죠. ‘금 가락지 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와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차별을 말씀하십니다. 이 각각의 단어를 짧게 설명할께요. (금=이 세상 가치. 가락지 = 인본주의에 묶여 있음, 아름다운 옷=이 세상이 보기에 아름다운 기준, 남루한 옷=이 세상에 보기에 남루한 기준 = 예수 그리스로, 가난한 사람= 이 세상의 가치를 잃어 버린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을 서로 차별하면 악한 생각이라고 합니다. 조금 어렵습니다. 잘 들으세요. 일단 ‘차별’은 그 기본 전제가 ‘너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즉, ‘한 몸’원리의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악한 생각이죠. 더구나 그렇게 차별하게 되면 항상 자신의 기준으로 그들의 위치(높, 낮이)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결정해서 낮게 평가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기왕에 '차별'이라는 말을 묵상하고 있으니 그와 비슷한 본질을 가진 '비판'에 대하여서도 잠깐 묵상을 해보죠. 복음서에 보면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의 본질도 ‘한몸’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이유의 핵심은 바로 ‘나는 너와 다르다’입니다. 그래서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하셔야합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 진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정답은 다 허구입니다. 그래서 진짜 핵심은 바로 ‘나누지 말라’에 있습니다. 즉, ‘한 몸’원리죠. 그래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하지 말하는 말씀은 바로 '너와 그 자는 같다.'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객관화하여 보지 못합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죠. 그래서 하나님은 '타인'이라는 시스템을 만드셔서 '나'를 객관화시켜 놓으신 것입니다. TV에 나오는 흉악범들을 보고 우리는 욕을 하죠. 그러나 그 자들이 바로 '나'입니다. 내 안에도 같은 죄가 들어 있죠. 단지 발현만 안된 것 뿐입니다. 

 

 즉, 살인범을 보고 인간은 저렇구나~~ 내가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구나~~ 난 역시 예수님이 아니면 소망이 없는 존재로구나~~ 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는 자들이 복음의 진영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인본주의라는 땅(지)에 묶여(옥) 있는 자들은 살인범을 보고 저런 나
쁜놈이 있나~~ 난 저런 자와 같지 않아~~ 난 살인을 안 했으니 저런 사람과 다르게 착한 사람이야~~ (난~~ 의롭네~~ )의 방향성을 가지게 된 자들입니다. 

 

 위의 두 '예'에서 거론 한 두 종류의 사람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온 '금가락지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인본주의에서 의롭다고 높힘 받는 사람)' 과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인본주의에서 비참하고 죄인이라고 여김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더 깊은 본질은 바로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의 정체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인본주의에서 가장 비참한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셨죠. 그 분은 하나님께서 죄인의 모습이라는 가장 남루한 옷을 입은 채 하늘의 모든 지위를 버린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마지막 구절이 탄생한 것입니다. 

 "약2:5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마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전부 예수님 이야기 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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