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모든 율법을 다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것’이라고 성경은 선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매우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말씀의 비밀을 엿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곳곳에 우리가 샛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율법이 지키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죠. 서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에덴 동산의 어디에 심어 놓으셨나요? 바로 ‘중앙’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선악과를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고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을 ‘중앙’에 심어 놓으신 이유는 바로 ‘인간이 선악과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일부러 죄 짓게 만든 것 아니냐?’로 질문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 부분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천지창조의 진정한 실체는 예수님을 통하여 현재의 우리가 복음을 알게 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바로 이 때(여러분의 전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 바로 성경의 창세기 1장1절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입니다. 즉, 우주와 인류의 전 역사는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매우 커다란 ‘상징’입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뜻하죠.
그래서 선악과는 인간이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필요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시간과 공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줄을 몰랐다 ! ' 는 것은 모순입니다. 즉, 선악과 자체도 복음을 복음답게 만든 상징에 불과하죠. 인간은 선악과를 먹어서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와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즉,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다’라고 선악과의 기준을 스스로 바꾸어 버렸죠. 선악과 에피소드는 죄인 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 나가는지 그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는 그림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즉, 원인이 아니라 과정일 뿐입니다. 죄란 기준이 바뀐 것을 말합니다.
“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이 말씀을 잘 묵상해보세요. 하나님께 1장1절에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혼돈, 공허, 흑암이 왜 있을까요? 혹은 1장1절을 그냥 서론격이라고 보게 되어 아직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기 전이라면 혼돈, 공허, 흑암이라는 것은 왜 존재할까요? 둘 다 모순입니다. 이 둘도 아니라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도 모순이 되죠.
그래서 이 창1:2절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선택된 자들을 진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를 하기 전의 인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구절이 바로 “창1: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가 나오는 것이죠. 이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즉, 천지창조 자체가 모두 복음의 순서가 됩니다. 즉, 복음이 본질이고 천지창조가 그것을 가리키는 상징(그림자, 표지판)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창조와 멸망은 한 세트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용도가 다 하면 폐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다시 정리해봅시다. 창세기 1장 1절-3절로 모든 복음이 설명된 것입니다. 또한 모든 천지 창조가 설명된 것이며 천국이 설명된 것입니다. 즉,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혼돈, 공허, 흑암의 상태에 있는 인간을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구원하여 진짜 천국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이후 만들어지는 2일째, 3일째...날들은 모두 이것을 기반으로 복음이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나서 구원을 이루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나중에 창세기를 묵상할 때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매우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자연이 순응하여 진짜 우주와 자연이 실존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실존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그 실존 안에 참 진리인 복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죠. 성경 참 재미있죠?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 에피소드를 통하여 인간이 어떻게 혼돈, 공허, 흑암에 처하게 되는지를 설명하신 것이죠. 또한 율법이 바로 이 선악과의 역할을 이어받게 됩니다. 즉, 율법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혼돈, 공허, 흑암에 처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서 스스로 ‘선’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자기 기준의 행위와 노력’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가 없죠. 그래서 자신의 죄됨을 깨닫게 됩니다.
선악과가 단 한가지의 율법이었다면 구약의 율법은 613가지의 선악과(하위 카테고리까지 하면 2134개)로 나타났고 지금은 성경책 전체가 바로 그 역할을 맡고 있죠. 또한 각 나라의 헌법, 국법, 양심법 등등도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이 알게 모르게’ 순응해서 만들어진 법들입니다. 이 피조세계는 그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규칙에 저절로 순응됩니다.
어떤 마늘을 연구하는 박사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그는 완벽한 무신론자였죠. 그런데 마늘에 관해서 끝까지 파고, 파고 연구하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저히 하나님이라는 분을 인정하지 않고는 이 작은 마늘이라는 존재 하나도 결국 설명되지 않는 극한의 연구의 끝을 본 것이죠. 이처럼 이 세상 전부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복음을 설명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우리의 기준을 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탑을 쌓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그것을 볼 수 없는 것 뿐입니다. 이 탑을 바벨탑이라고 하죠. 다른 말로는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참 죄’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게 만드신 것이죠. 당연히 하나님의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말씀이 오늘 나온 13절의 말씀입니다. ‘긍휼이 심판을 이긴다’고 나오죠. 그래서 이것을 알게 된 자들은 율법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 말씀이 바로 12절의 말씀입니다. ‘자유의 율법대로..’라는 말씀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말씀은 조금 더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않으면 긍휼없는 심판을 받는다'라고 나옵니다.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자들의 시각과 복음의 진영에 들어와 있는 자들의 시각의 차이를 한번 적어 볼께요.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결국 이 말씀을 가지고 '그래~~ 내 마음 속에 긍휼함이라는 마음을 잘 키워서 타인을 항상 긍휼함으로 대하자~~' 라는 방향성을 갖게 되죠.
그러나 복음의 진영에 있는 자들은 '긍휼'을 '예수님'으로 압니다. 즉, '긍휼을 행하지 않으면' 을 '예수님에게 묶여 있지 않으면'으로 받아 들이죠. 그래서 그 다음 문구인 '긍휼없는 심판을 받은다.'도 '예수님이 없으므로 심판을 받는다.'로 알게 되죠.
오늘 말씀의 진행 순서를 다시 한번 복기 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절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죠. 그래서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게 하시죠. 그리고 그 긍휼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죠. 그래서 예수님에게 묶여 있는 것만이 심판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비밀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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