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23:1-5(22.10.25.화)

은혜바라기 2022. 10. 25. 08:40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로마 천부장은 결박당한 바울이 로마의 시민이라는 것을 알고 자세를 매우 낮추게 됩니다. 특히 자신은 돈을 주고 산 로마 시민이지만 바울은 태어나면서 부터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우리는 이 모든 상황 조차 성령께서 이미 조율하셨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바울은 계속 복음의 도구로 활용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바울은 다시 유대인들에게 변명 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1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범사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합니다.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인본주의 양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 되면 이 1절을 곧이 곧대로 ‘아~~ 바울은 정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늘 잘 섬겼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우리는 성경을 잘못된 방향으로 읽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방향성을 잘 잡으세요. 오직 하나님을 잘 섬기신 분은 예수님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자신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바울의 결박이 시작된 첫 날 첫 구절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22장1절을 보죠. 

 “행22: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성령께서 왜 이 긴 에피소드의 시작을 ‘바울의 변명’으로 시작하셨는지 이해가 되시죠? 지금은 바울의 변명 시간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것을 사용하여 계속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중이시죠. 

 바울이 ‘난 범사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하죠. 바울의 얼토당토한 선언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의 착각’을 응징하여 한 것이죠. 이 장면과 같은 상황이 이사야서에서도 나옵니다. 아주 유명한 에피소드죠. 

 “사6:5-7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

 이사야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던 선지사였습니다. 말씀과 율법을 사람들에게 열심히 가르쳤죠.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의 의도(복음)를 알게 되자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즉, ‘내가 지금까지 한 모든 나의 노력, 성과, 업적들이 오히려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 난 망했네~~~’ 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천사 중 하나가 핀 숯으로 이사야의 입술에 갖다 대죠. 그 이후에 이사야의 악과 죄가 사하여집니다. 

 지금 성령께서는 오늘 본문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 이사야의 에피소드를 꺼내 들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울의 성과와 업적에 절대 매몰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울을 망하게 하고 그것에 매몰된 우리도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은 핀 숯(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후 바울은 곧바로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비판합니다.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하죠. 회칠한 담이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의미하죠. 바울은 이것을 바로 풀어서 말하죠.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하느냐’고 합니다. 회칠한 담은 ‘외식하는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외식에 대하여서는 매우 자주 가르침을 주셨죠. 즉, 인간은 모두 ‘외식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때 또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곁에 선 자가 ‘바울아 네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욕하냐? ’고 하죠. 이에 바울이 ‘난 그가 대제사장인줄 몰랐다.’고 변명합니다. 너무나 궁색하죠. 그런데 더 궁색한 변명이 뒤따라 나옵니다.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성경에도 백성의 관리(지도자, 제사장등등)를 비방하지 말라고 나오는데 내가 그것을 알면서 대제사장을 비방할 리가 없잖아~~~ 난 정말 그가 대제사장인줄 몰랐다니까~~’ 라고 성경을 이용하여 변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때요? 이쯤 되니까 바울이나 우리나 매일반이죠? 대단한 것은 이런 나 같은 바울을 사용하여 복음을 가르치고 있는 성령님이라는 것이 느껴지나요?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 4-5절에서 과연 성령님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이 권세는 이 세상의 지도자들의 권세까지도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종은 상전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나오죠. 이것은 상당한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종과 상전이라는 신분의 위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오직 복음만 생각하시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종이 상전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의 순종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인간의 죄악된 신분관계까지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다윗과 솔로몬은 정말 많은 부인들을 거느리죠. 그런데 이것도 모순입니다. 이것은 사실 ‘간음’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추천하지는 않으시지만 그렇다고 굳이 강한 징벌 조차 하지 않으셨죠. 오히려 약간 인정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죠. 왜 그럴까요? 바로 예수님의 신부들은 많은 지체, 즉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다윗과 솔로몬의 많은 부인들의 모습은 예수님과 교회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과 악의 개념과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관점은 많이 다르죠?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으시죠.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이 전부여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바울은 선, 대제사장은 악으로 보는 인본주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두 사람 모두 오직 복음 즉, 예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등장한 인물이라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어렵죠? 현실적 예를 들면서 마치죠. 

 민주당과 국힘당. 어느쪽이 옳죠? 아마도 자기가 지지하는 당이 옳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민주당을 들어서 국힘당을 치시고 국힘당을 들어서 민주당을 치시면서 정치 무가치론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치를 하지말자~'도 아닙니다. 정치가 존재해야 정치가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통령이 존재해야 대통령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죠. 즉, 노무현, 김대중, 박근혜, 이명박, 윤석열 모두 하나님이 세우신 대통령이 맞습니다. 이것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바로 율법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바울이 말한 부분이 이 부분이죠.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정치 시스템은 결국 그 무가치함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오직 참 가치인 예수님만 바라보고 소망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죠. 

 

 제가 이렇게 현실적인 예를 든 이유는 지금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사도행전의 에피소드 부분이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선한 역활의 주인공으로, 나머지 유대인들을 악한 역활의 악당으로 바라보면서 성경을 읽으시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은 비겁한 변명 중이고 그와 대치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회칠한 무덤들입니다. 우리는 이 두 관계를 통해 그 속의 본질인 복음을 묵상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민주당이 맞는가? 국힘당이 맞는가? 가 아니라 인간 정치의 무가치함을 알게 되어 복음을 알게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더 넓게 설명하면, 사회공산주이가 맞는가? 자유민주주의가 맞는가? 가 아니라 어떠한 이념도 그 이념의 실제 현실속을 들여다 보면  비참한 인생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답이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거룩한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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