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직전 묵상까지 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끝났습니다. 일곱 교회는 교회가 7개라는 개수의 의미가 아니라 완전한 교회, 즉 선택받은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에게 하신 모든 말씀은 전부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책망 같이 들리는 말씀은 나의 옛 자아가 반드시 사회, 가정, 교회(종교) 안에서 겪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칭찬 같이 들리는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나를 견인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즉 나의 열심이 아니라 성령님의 열심만 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런 일곱 교회(나)를 구원하신 주인공 예수님이 등장하시죠.
여기서 잠깐 요한 계시록의 전체 구성에 대하여 알아보죠.
요한 계시록은 일곱 교회를 소개한 후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이후 그 예수님께서 인류 역사에 어떻게 관여하시면서 구원을 이루어 내시는가?를 7인,7나팔,7대접을 통해 나옵니다. 여기서 일곱 인, 나팔, 대접은 시간순서가 절대 아닙니다. 또한 일곱은 복음의 완전수이므로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인, 나팔, 대접은 각각 복음의 속성을 의미합니다. 인은 복음의 은닉성, 나팔은 복음의 선포성, 대접은 복음의 준비성을 의미합니다. 고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은닉성, 선포성, 준비성을 가지고 완벽한 구원이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모든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내용을 보면 ‘고난’이죠. 그게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선택한 인본주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고난을 통해 알게 되면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만 바라 볼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실체가 되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소망한다는 것이 계시록의 결말입니다.
이후 요한계시록은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 교회, 인본주의 이 셋의 관계를 어린양, 여자, 짐승의 관계를 통해 알려주시죠. 여자와 짐승이 같이 사는 장면, 이후 인본주의 짐승이 심판받고 여자는 고난받는 장면, 이후 예수님께서 여자를 구원하는 장면 이후 마지막 21장에서 부터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천국을 묘사하면서 요한 계시록이 끝납니다.
요한 계시록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시간의 순서대로 혹은 역사의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 계시록 1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모든 장면은 선택받은 자들의 삶에서 반드시 나타납니다. 물론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강도로 진행이 되죠. 이것을 1/4 ,1/3의 고난으로 표현한 것이죠.
오늘 말씀 1절을 보면, ‘하늘에 열린 문’이 있죠. 이것이 복음의 ‘인(은닉)’의 속성입니다. 복음은 절대 인간이 보고 싶다고 해서 열고 싶다고 해서 열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죠. 그 전에는 항상 닫혀 있습니다. 은닉성이죠. 이 일곱 인을 예수님께서 떼시게 됩니다. 이것을 '하늘에 열린 문'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1절 중반에 ‘나팔 같은 소리’는 복음의 ‘나팔(선포)’의 속성입니다. 복음은 선포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복음은 타협하고 논쟁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직 선포되어 그것을 알아듣는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1절 후반에 보면, ‘마땅이 일어날 일들’이 복음의 ‘대접(준비)’ 속성입니다. 여기서 대접이 의미하는 것은 그 무엇이 담겨져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고난이 이미 창세전에 대접에 담어서 준비하고 있으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이미 1절에 완전한(7) 인, 나팔, 대접이 나왔죠. 이후 이것을 더 세부적으로 풀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게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계속 같은 것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 설명하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