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계4:4-6(24.08.12.월)

은혜바라기 2024. 8. 12. 08:33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천국의 진정한 정체는 ‘교회(나)’라고 직전 묵상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천국은 어떤 장소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교회(나)를 모아서 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만들어지는, 즉 관계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 하시면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라고 하신 것은 천국이라는 아름다운 장소를 만들고 다시 올께~~ 라는 말씀이 아니라 십자가로 인해 복음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교회를 모아서 천국이 지어져간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영적 천국(교회)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시간적, 역사적으로 풀어서 설명하셨지만 ‘묵시’의 세상에서는 천국(교회)은 이미 태초에 완성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는 복음과 천국을 과거-현재-미래의 순으로 이해를 할 수 밖에 없지만 사실 ‘완성된 미래(묵시)’가 가장 우선이고 이  완성된 묵시에서 부터 조금씩 실타래가 풀리듯 ‘현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일곱 인(나팔,대접)이 풀리는 과정이죠.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은 죽은 후에 눈을 뜨면 그곳에 이미 모든 교회는 완성되어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선택받은 자들이 죽은 후에 눈을 뜨면 그 곳에 나의 자식(선택받은 자라면)은 이미 존재합니다. 하지만 나의 자식으로써가 아니라 나와 나의 자식 모두 예수님의 신부로 존재합니다. 

 성경은 이 모든 교회를 항상 12라는 숫자로 설명합니다. 12는 이 땅(4)에서 성부성자성령 하나님(3)을 알게 된 자들 (4*3=12)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제자, 계시록의 12*12*1000=144,000명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예수님이 앉은 보좌에 24 보좌가 있고 그 위에 24장로들이 있다고 나옵니다. 12라는 숫자가 24로 표현된 이유는 증거의 숫자 2가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완벽하게 교회로 증명된 사람이라는 의미로 12 *2 =24로 표현된 것이죠. 또한 구약12지파+신약12제자 =24(역사상 모든 교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 늘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교회는 지역교회가 아닙니다. 완벽하게 선택받은 예수님의 신부들을 의미합니다. )

 이 24장로(교회)가 흰 옷을 입고 입죠. 흰 옷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피로 덮어서 죄를 가린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왕 같은 지위를 부여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24장로는 자신들의 금관을 모두 예수님의 발 앞에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구원에 있어서 자신의 공로가 단 1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공로는 전부 예수님께~~ 라는 의미죠. 

 예수님의 보좌로부터 ‘번개, 음성, 우렛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도 모두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번개는 어둠을 가르는 빛의 속성, 음성은 복음은 행위, 기적, 상상과 같은 것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음성 즉 말씀’으로 전달된다는 속성, 우렛소리는 매우 강력하고, 크고, 확실하게 전달된다는 속성을 의미합니다. 종합하면, 복음은 인본주의 어둠을 가르고 오직 말씀의 형태로 선택받은 자들에게 매우 강력하게 전달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예수님의 보좌 앞에 등불 일곱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설명이 붙죠. 여기서 나온 ‘일곱’이라는 것은 영이 일곱 개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완전수 7을 사용하여 ‘완전한 영, 즉 성령’을 의미합니다. 전에 말씀한, 일곱 교회도 교회가 일곱 개라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교회(나)’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 일곱 교회를 가져다 쓴 것 뿐이라고 말씀드렸죠?

 또한 예수님의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고 합니다. 바다에 대한 해석은 조금 복잡합니다. 일단 ‘물’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그 물이 모두 모인 바다는 넓은 의미로 보면 하나님 은혜의 집합체죠. 그 안에 있는 물고기들은 공기(생명)와 연결이 끊겨서 있기 때문에 원래는 죽은 것들이지만 스스로는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인생들을 의미합니다. 

 ‘바다=하나님 은혜의 집합체’ 이 의미를 인간의 방향에서 보면, ‘역사’가 됩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는 사실 ‘하나님 은혜의 집합체’입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반듯이 인본주의 심판(분리)을 가져오죠.  그래야 선택받은 자들이 인본주의에서 분리되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이라는 회초리를 사용하십니다. 이  고난을 인간의 방향에서 보면 ‘저주와 멸망’입니다. 

 어렵죠? 그래서 바다는 하나님 구원의 은혜 속에 있는 모든 인류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표면적으로 바다를 ‘저주’로 다루기도 하고, 본질적으로 ‘은혜’로 다루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다를 저주 받은 바다, 고난스러운 바다라고만 하지 않고 오늘 같이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완벽한 하나님의 은혜가 관통하여 세밀하게 관찰되어지는 인류 구원의 역사의 한마당 정도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6절 후반절 네 생물은 내일 묵상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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