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 반복서론 : 인, 나팔, 대접이 첫째부터 일곱까지 나열된 것은 시간(역사)의 순서를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고난을 그 속성 별로 나열한 것 입니다. 고난을 코끼리로 표현한다면, 코, 귀, 다리로 분리하여 나열한 것과 같죠. 하지만 우리에게 코끼리(고난)가 다가 올 때는 통째로 다가옵니다. 이 중 1-4까지는 동서남북(4)을 가리키는 이 땅의 관점에서 본 고난, 5는 율법과 행위의 갈등 관점에서 본 고난, 6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본 고난, 7은 마지막 심판, 분리, 완성의 관점에서 본 고난을 의미합니다.]
숫자 6은 인본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에 여섯째 천사가 부는 나팔은 ‘인본주의’ 관점의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장 극심한 고난이 소개됩니다. 가장 극심한 고난이면서도 숫자 7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므로 심판, 분리, 완성의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 금 제단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와 제단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키죠.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전 인류가 드리는 제사(제단)입니다. 그 제물이 ‘예수님’이시죠.
이 제단에는 ‘네 뿔’이 있습니다. 4는 동서남북 이 땅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뿔은 구원의 권한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보면 과실로 사람이 죽인 자가 도피성에 들어가 이 뿔을 잡으면 처벌을 면합니다. 즉,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죠. 구약의 도피성 율례 조차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죠.
제단의 네 뿔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진 구원의 권한을 의미합니다. 이 땅(4)에 우뚝 솟아 있는 구원의 뿔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골고다 언덕에 박혀 하늘로 우뚝 솟아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결국 제단의 네 뿔에서 나오는 음성이란 구원의 권한을 가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라는 뜻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14절에서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이라고 하죠. 계속 말씀드리지만 천사는 모두 성령님으로 해석하셔도 됩니다. 이 천사들은 성령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의 구원을 견인하기 위해 성령님의 명을 받는 영들이기 때문에 머리와 손을 굳이 따로 나눌 필요가 없듯 성령님과 천사를 같이 생각하셔도 됩니다. 예를 들면, 왕이 편지를 써서 어떤 대신을 통해 백성들에게 소식을 전한다고 해보죠. 이 때 굳이 ‘대신의 정체’에 초점을 둘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냥 ‘왕이 백성에게 소식을 전한다’라고 생각하셔도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성령님과 함께 일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을 성령께서 전하시고 그것을 이끈다~~ 는 방향성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14절 하반절에도 천사가 나오죠. 그 천사는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입니다. 이 천사는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라고 나옵니다. 여기에 나온 천사도 ‘성령님의 섭리’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유브라데 강은 창세기 2장에 나옵니다. 에덴에서 뻗어 나온 4가지 강 중 네 번째 강이죠. 에덴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에덴은 온통 복음만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온 땅으로 4개의 강이 뻗어 흐른다는 것은 온 인류 역사에 하나님의 은혜의 강, 즉 복음의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와 복음 역사는 함께 새끼줄 처럼 꼬아져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이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가 풀렸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쉽게 시간적 순서로 해석을 하면, 성령께서 심판을 준비(결박)하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명령하시자 그 심판을 시작하신다~~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모든 계시록의 말씀은 ‘의미적 순서’입니다. 그래서 이 심판은 어느 순간 ‘요이~~땅~~’ 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역사적 시간으로 보면, 이 심판은 예수님의 십자가 시점에서부터 시작하죠. 하지만 십자가의 심판의 시작도 ‘의미적 순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심판은 이 세상이 창조되면서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전의 구약, 십자가 후의 신약, 그리고 미래 까지 이 심판은 이미 적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년 월 일 시’에 일어난다고 나오죠. 이것도 어떤 역사의 한 시점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의미적으로는 ‘2천년 전의 예수님의 십자가 그 시점’이 맞습니다. 하지만 ‘년 월 일 시’의 본질적 의미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삼분의 일만 죽는다는 것은 제한된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유기된 자들 중에 삼분의 일만 죽인다~~ 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를 죽이는 것이 촛점인데 제한된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들을 계속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죠. 자기 십자가를 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만드는 것이죠. 즉 죽이는 것인데 그것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완전히 죽이는 것이 아니다~~’를 ‘삼분의 일만 죽인다~~’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마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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