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마병대는 ‘말을 타고 전쟁을 치루는 군대’입니다. 이 마병대의 정체가 뭘까요? 그 힌트가 16절에 나옵니다. ‘이만 만’이라고 합니다. 숫자 2는 증거(증명)의 숫자이며 만은 완전수입니다. 그런데 ‘만’이라는 완전수가 ‘만 만’으로 두 번 반복하여 ‘강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합하면, 완벽하고 온전하게 증명(증거)되기 위한 영적 전쟁을 치루는 그림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한 이 ‘수’에 집중시키려고 16절 하반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나’라고 나오죠.
숫자 4는 이 땅 동서남북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1-4까지는 이 땅의 관점에서 본 고난이죠. 숫자 5는 율법과 행위의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 고난을 표현하려고 ‘황충’이 등장했죠. 율법과 행위는 선택받은 자들의 마음에 들어와 전갈의 찌름과 같은 고통(갈등)을 줍니다.
그런데 율법과 행위가 선택받은 자들에게 고난을 주는 이유는 오늘 나온 여섯 번째 나팔에서 말하는 ‘이 만 만의 마병대’의 정체인 ‘증거(증명)’에 달려 있습니다. 율법의 표면적 목표는 율법을 행위로 잘 지켜내는 것이지만 숨겨진 율법의 참 목적은 모든 인간은 절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소망하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5번째 나팔 ‘율법과 행위’의 고난을 받은 인간은 율법을 절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5+2=7)하게 되면서 예수님만 소망하여 완전한 복음의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영원히 7이 될 수 없는 6에 머무르게 되죠. 그들은 오직 이 땅의 숫자인 4만 증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4+2=6에 머물죠.
이런 관점으로 오늘 말씀을 잘 보세요.
17절, 불빛은 정화를, 자주빛은 예수님의 왕 되심을, 유황빛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호심경은 굳건한 십자가 사역을, 사자 머리는 경외심을 표현합니다.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속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이죠. 그런데 구원이란 죄에서 분리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심판과 같이 작동을 합니다. 물로 손을 닦으면 손은 구원을 받지만 상대적으로 먼지는 버려지죠. 인간이 율법과 행위 고난을 받으면서 ‘인간은 절대 온전하게 율법을 지킬 수가 없구나~~’를 알게 되면서 옛 자아는 조금씩 버려지고(부인되고, 분리되고) 그 때 마다 유일한 대안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정화시키는 ‘불빛’으로, 소망의 왕이신 ‘자주빛’ 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유황빛’으로, 우리의 구원을 굳건히 이루어 가시는 ‘호심경’으로, 그리고 심판자이시므로 사자와 같은 경외심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죠.
이후 좀 더 구체적으로 3가지 재앙으로도 표현이 됩니다. 18절, ‘불, 연기, 유황’입니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 하늘에서 내린 재앙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인본주의를 의미합니다. 애굽과 같죠. 이것을 십자가의 속성인 불, 연기, 유황의 고난으로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유기된 자들과 선택된 자들의 분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와 거듭난 자아의 분리입니다.
그러나 20-21절을 보면, 이 고난으로 죽지 않고 남은 자들은 전혀 회개하지 않는다고 나옵니다. 특히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않고’라고 표현되면서 ‘행위’를 강조합니다. 요한 계시록은 살아 남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옛 자아가 죽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스라엘(선택받은 자들)이 애굽(인본주의)에서 분리되어 광야에서 40년(이 땅의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고난으로 1세대 60만명(6은 인본주의 :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많은 나의 옛 자아)이 모두 죽습니다. 그렇게 옛 자아가 다 죽어야 비로서 2세대(거듭난 자아)가 가나안(천국)으로 여호수아(예수님의 히브리 표기)와 함께 들어가죠. 완벽하게 복음을 설명하고 있고 완벽하게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훈련과 고행으로 해탈의 경지를 이루어야 한다~~'로 이해하시면 불교와 같은 종교가 됩니다. 올바른 방향성은 원래는 내가 이렇게 죽어야 하지만 나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의 옛 자아가 죽을 때 마다 예수님만 소망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증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복된 소식, 복음이라고 합니다.
끝
추석 잘 보내세요~~ 다음 한 주 묵상을 쉬고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이어갑니다.
단, 추석 기간동안 이미 포스팅 되어있는 특집(묵상)을 다시 다듬어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