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큰 음성’이란 선택받은 자들에게 확실하게 들리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이후 ‘되었다’라고 결론지으면서 ‘복음이 완성 되었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번개, 음성, 우렛소리는 모두 복음의 속성을 가리킵니다. 번개는 어두움을 가르는 빛의 속성, 음성은 말씀으로 전해진다는 속성, 우렛소리는 선택받은 자들이라면 완벽하게 들린다는 속성을 의미합니다.
지진은 땅을 흔드는 것이죠. 땅은 이 세상을 가리키고 이 세상은 ‘인본주의’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이 최고라고 믿고 이 땅에서 잘 살기만을 바라며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믿는 이 세상(땅)을 흔들어서 엄중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 즉 인본주의 가치는 의, 식, 주, 재물, 권력, 인기, 명예, 지식, 자녀 등등 수 없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가치를 흔들어 무너뜨리십니다. 그리하여 선택받은 자들에게 참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케 하려는 것입니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역사를 보면 많은 제국과 나라가 망하거나 어려워지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사건이 초점이 아닙니다. 실제로 제국과 나라가 망하거나 어려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역사가 순종하여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오히려 이런 역사적 현상들은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이 목적이죠. 그렇다면 참 목적은 무엇일까요? 인간 역사 중 최고 공동체(제국)를 망하게 함으로써 인간이 최고로 생각하는 인본주의 가치는 무의미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가치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진노의 포도주 잔’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고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권자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 섬과 산악이 없어진다고 하죠. 섬과 산악은 나라에 속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섬과 산악이란 인본주의에 속한 여러 부수적인 가치들을 의미합니다. 제국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고 어려워지지만 그에 속한 가족 공동체나 교회 공동체도 망하고 어려워진다는 의미입니다. 그 어떤 것도 이 땅에 속한 것은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족이나 내가 다니는 지역 교회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유럽의 몇 백년 된 교회들도 거의 다 망했습니다. 가족도 고난이 닥치면 해체되기 마련입니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다 망합니다. 유일하게 망하지 않는 것은 역사와 시간을 관통한 ‘참 교회’ 뿐입니다. 여기서 참 교회란 우리가 다니는 지역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모든 역사 속에서 그 분과 영적으로 연합된 선택받은 사람들의 전체 모임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들의 숫자가 작을 것이라고 나옵니다.
마지막 21절, ‘한 달라트나 되는 큰 우박이 내린다’는 구절에 나오는 ‘1(한)’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달란트는 ‘가치(재능)있는’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박은 물의 결정체이므로 원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지만 유기된 자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재앙이 됩니다.
더러운 오물이 묻은 손을 물로 닦으면 손은 깨끗해지지만 오물의 입장에서는 멸망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노아의 방주 때 노아는 물로 인해 뜨임(구원)을 받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물속에서 멸망되었죠. 그래서 물의 심판적 기능을 강조하려고 단단한 물의 결정체인 우박이 내리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박이 내리니 유기된 자들은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 재앙이 심히 크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비방하는 유기된 자들 중에는 ‘나의 옛 자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광야시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간의 고난에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장면이 기억나시죠? 그러면서 우리의 옛 자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아니죠. 예수님께서 나 대신 그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며 믿는다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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