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17:8-11(24.11.14.목)

은혜바라기 2024. 11. 14. 07:56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짐승은 사탄이기도 하고 인본주의를 상징하기도 하면서 나의 옛 자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는 의미는 사탄과 인본주의 그리고 나의 옛 자아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시간적 순서로 이해하시면 안 되고 의미적 순서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옛 자아, 사탄, 인본주의(혹은 인본주의 가치)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이미 무가치해졌습니다. 사탄은 이미 그 머리가 예수님께 밟혔고 나의 옛 자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혔죠. 그래서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택받은 자라도 이 세상에 옛 자아로 태어나서 잠시 동안 인본주의에 묶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 옛 자아를 통해 내가 복음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8절 후반절을 보면, 땅에 살면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죠. 이들도 똑같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긴다고 하죠. 이것도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의미적 순서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생명책에 없는 자들은 유기된 자들이 확실하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존재 같지만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오직 인본주의 가치만을 놀랍게(경외)여긴다고 나오죠.

 일곱은 개수나 순서가 아닙니다. 7이라는 숫자가 가지고 있는 ‘복음적 완전성’이라는 속성을 가져다 쓴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머리, 일곱 산, 일곱 왕이라는 의미는 우리의 옛 자아가 완벽하게 바벨탑 꼭대기를 탐한다는 속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벨탑은 인본주의 가치를 탑의 구조로 세워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늘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나는 것들을 위해 싸우고, 경쟁하고, 노력하고, 희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인본주의 바벨탑의 구조는 1층이 재물(의, 식, 주 =돈)이고 2층이 권력(인기, 명예, 정치)고 가장 꼭대기 3층이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광야 3시험과 같죠. 

 10절을 보면, 7중에 5는 망하였고 하나(남은1=6)는 있고 하나(남은1=7)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지만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른다고 합니다. 7은 안식의 숫자입니다. 예수님 나라(천국)의 숫자죠. 이렇게 7이 되는 과정을 숫자로 푼 것입니다. 풀어볼까요? 

 7안에는 5가 들어 있다고 하죠. 5(모세오경)는 율법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항상 율법으로 선택받은 자들을 하나님께 참소(고소)합니다. 이것으로 그 어떤 사람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죠. 그래서 사탄도 결국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율법 하에서 우리는 모두 망한 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인 6은 인본주의 숫자입니다. 인본주의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고난을 주죠. 그 고난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인본주의 결과가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나머지 숫자 7은 안식, 즉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하나가 잠시 동안 머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잠시 육체로 오셔서 머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더 큰 초점은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인생 중에 그들과 잠시 함께 머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1절을 보면, 전에 있었다가 없어진 짐승은 사탄 혹은 인본주의라고 했습니다. 그 짐승을 여덟째 왕이라고 표현하죠. 그런데 그 짐승은 일곱 중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숫자 7은 복음적 완전수, 즉 안식을 의미합니다. 고로 짐승이 여덟째 왕이라는 것은 복음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시 7에 속하였다는 것은 사탄조차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에 속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역할을 다하게 되면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