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16:12-16(24.11.11.월)

은혜바라기 2024. 11. 11. 08:04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과 동쪽 제국들(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 페르시야)의 경계를 의미합니다. 이 유브라데 강이 말라버리면 동쪽 제국들이 쉽게 넘어와 박해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강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고 제국은 인본주의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지면 모든 인간은 인본주의에 묶여 버린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 해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구원받았지만 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홍해 바다로 다 멸망시켰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숫자 6은 인본주의 숫자죠. 영원히 7이 될 수 없는 숫자이면서 이 땅(4)에서 이 땅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만 증거(2)하는 (4+2=6)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섯째 천사의 대접은 인본주의 세상에 묶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옛 자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대접은 '이미 준비되어짐' 이라는 속성입니다. 

 인본주의 전체를 ‘귀신의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귀신들린 자를 고치면서 복음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인본주의에 묶여 인본주의 가치만을 쫓는 삶을 살아가는데 이것이 마치 귀신에 들려 귀신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과 그 현상이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 오셔서 이렇게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선택받은 자들을 구원하게 된다는 것을 성령께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어떤 교회들은 귀신 들린 자를 고친다고 사기치면서 성도를 모으죠.

 숫자 3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숫자 1을 증명(2)한다는 의미도 되죠. 그런데 13절을 보면, ‘개구리 같이 세 더러운 영’이라고 되어 있죠.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 흉내내기, 하나님 자리 차지하기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숫자6이 하나님을 닮으려 6을 세 번 반복한 666이라는 짐승의 숫자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영이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계속 나온다고 합니다. 용, 짐승, 거짓 선지자 모두 인본주의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조금 자세히 분류하면 용은 사탄의 본체를 의미하고 짐승은 우리의 옛 자아를 포함한 인본주의 실체를 의미하고 거짓 선지자는 인본주의 종교, 인본주의 종교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14절은 이런 모든 것을 통틀어 ‘귀신의 영’이라고 하는데 이 귀신의 영이 하나님과의 전쟁을 위해서 온 천하 왕들을 모으죠. ‘천하 왕들’은 ‘자신을 위해 사는 옛 자아’를 의미합니다. 백성들이 왕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옛 자아도 오직 나만을 위해 사는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확장 시키면 인본주의는 오직 인류만을 위해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신본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죄의 본질이죠. 

 15절 예수님께서 도둑같이 오신다고 하고 옷을 벌거벗지 않은 자가 복되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옷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유명한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잔치에게 쫓겨난다는 내용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잔치의 예복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죠. 

 도둑같이 오신다는 것은 오시는 그 날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재림의 정체성 자체가 미래의 어떤 정해진 시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개인적 종말(육체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며 인생의 기간 중 성령께서 오셔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려주시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 영(귀신의 영)이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왕들을 모은다고 합니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로 ‘므깃도 산’이라는 의미로 이스라엘이 이방 세력과 수 많은 전쟁을 치루었던 곳입니다. 고로 복음적으로 해석하면 ‘영적 전쟁터’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세상 인본주의 속에서 복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영적 전쟁을 치루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의 삶 자체가 아마겟돈이죠. 그 중에서도 우리가 다니는 지역 교회는 영적 전쟁터의 최전방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