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18:21-24(24.11.21.목)

은혜바라기 2024. 11. 21. 08:04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 당분간 서론에서 요한 계시록을 전체적으로 분류 & 요약 & 반복합니다. 한 번 읽으신 분은 [[ 이중괄호 ]]를 생략하고 묵상하시면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 예언서가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예수님께 선택받아 구원받은 자들의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복음적 관점에서 묵시 문학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와 자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날 같은 방향성의 사건은 계속 일어나지만 그것은 초점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무서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하는 선택받은 자들에게 미리 그 내용을 이야기해줌으로써 복음 안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서 평강을 얻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일곱 교회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숫자 7은 복음적 완전수이기 때문에 일곱 개의 교회라는 뜻이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님께 선택받은 모든 사람의 완전한 모임을 의미합니다. (묵시에서 완성된 참 교회를 의미하죠.)
 이후 7인, 7나팔, 7대접의 고난이 나오죠. 인은 ‘은닉속성’ 나팔은 ’알림속성‘ 대접은 ’준비속성‘을 의미합니다. 7은 복음적 완전수라고 했으니 복음이 은닉속성, 알림속성, 준비속성을 가지고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담겨 선택받은 자들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요한계시록1~16장입니다. 숲이 아닌 나무를 하나씩 하나씩 분류해서 설명하듯 고난을 통한 복음의 메시지를 숫자1234567로 나누고 각각의 숫자의 속성을 이용해 설명한 것이죠.
 이후 17장 부터는 나무가 아닌 숲은 보면서 전체적인 복음적 메시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17장은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를 붙잡고 있는 죄의 본질인 인본주의 정체에 관하여..
 18장은 그런 인본주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하여..
 19장은 그런 인본주의가 심판되면서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20장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신 이 땅의 모든 역사를 천년 왕국으로 비유하면서..
 21장~22장은 결국 완성되는 예수님 나라의 모습으로 요한 계시록은 끝을 맺습니다. ]]


 우리는 음악(멜로디)을 오직 귀로만 들을 수가 있죠. 그런데 만약 매우 특별한 사람이 존재해서 음악(멜로디)을 눈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일반 사람들이 그 글과 그림을 통해 음악(멜로디)을 들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요한 계시록이 그런 글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그 안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누구나 알 정도로 쉽게 해석해서 표현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영적 세상을 묵시 문학으로 그린 책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눈으로 멜로디를 볼 수 있는 자와 같이 영적인 복음을 이미 알고 있는 자만이 해석이 가능합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태초에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자들만이 해석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아직 때가 안 되서 기다려야 하는 분들도 존재합니다.)

 21절에 나온 ‘힘 센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셔도 됩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100% 순종하는 존재이므로 천사의 역할이 곧 하나님의 뜻, 즉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한 힘 센 천사라고 부연설명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순종하신 예수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천사와 예수님은 각각 다른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천사의 사명은 예수님께서 이행하신 사명의 일환이기 때문에 복음적 이해측면에서는 굳이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자의 권한을 받으셨죠. 그래서 그 분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21절입니다. 바벨론은 인본주의 상징입니다. 바벨론은 인간들이 모여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려고 만든 바벨탑을 의미하기도 하고 모든 인간이 나라와 나라를 통합하여 만든 가장 거대한 인본주의 울타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에피소드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인본주의 상징이고 출애굽 에피소드에서 애굽이 인본주의 상징입니다. 인본주의는 이 세상 혹은 전 인류를 모두 총칭하죠. 결국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간 인간이 만든 모든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인본주의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22절을 보면, 그런 인본주의 파생 산물들이 소개됩니다. 음악하는 자들, 세공하는 자들, 멧돌 돌리는 자들이 심판받아 더 이상 인본주의 안에서 들리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온 우주와 자연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미래의 어느 날 정말로 이런 현실적 심판이 일어나기도 하겠죠. 하지만 22절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심판이 초점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옛 자아로 살기 때문에 모든 인본주의 산물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체능을 추구하고, 세공업, 제조업과 같이 무엇인가를 만들고 세우며 살아가고 멧돌을 돌려 살림을 하듯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죠. 

 하지만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하면 그들은 복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후 그들은 이 세상의 가치가 점점 상실되고 오직 참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들의 삶의 공간에서 인본주의 가치는 점점 사라져 가게 되죠. 

 고로 심판이란 ‘분리’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선택받은 자들을 인본주의에서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리되어 남겨진 인본주의 세상은 더 이상 복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없어진 인본주의에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등불 빛도 없어지고 예수님과 교회를 상징하는 신랑과 신부의 음성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23절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속성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23절에 ‘상인들’이 만국을 미혹한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바벨론 성 중에 발견된다고 나오죠.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가 인본주의 삶 속에서 늘 광야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1세대 60만명이 광야에서 다 죽고 나서야 오직 2세대만 예수님을 상징하는 여호수아와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죠.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42번의 처소를 바꿔가며 60만명이 다 죽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이 얻어야 했던 것은 단 1개 뿐 입니다. 그들이 광야로 들어오기 직전 경험했던 ‘문설 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의 정체성’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에게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지금 42번의 광야 처소 중 몇 번째를 거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애굽에서 떡과 고기를  먹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