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21:9-17(24.12.06.금)

은혜바라기 2024. 12. 6. 08:11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일곱 대접, 일곱 재앙, 일곱 천사”에 나오는 일곱은 숫자 혹은 개수의 의미가 아니라 숫자 7의 속성인 ‘복음적 완전성’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하게 준비(대접)된 심판(재앙)의 권한을 사용하는 성령님(완전한 천사)으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물론 천사와 성령님은 다른 지체이지만 천사의 모든 행위는 성령 하나님의 의도이므로 성령 하나님으로 이해하셔도 됩니다. 즉, 일곱 천사란 성령 하아님의 의도를 완전하게 이행하는 천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 성령께서 요한에게 어린 양의 아내를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당연히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어린 양의 아내는 참 교회, 즉 선택받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미 묵시 속에서는 참 교회는 완성되어 있습니다. 이미 선택받은 자는 태초에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10절을 보면 이렇게 완성 된 참 교회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부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히브리 사전에서 찾으면 ‘분리’라는 뜻 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교회라는 의미는 인본주의와 완벽하게 분리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본주의와 완벽하게 분리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 뿐이죠. 그래서 교회를 예수님의 신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11절부터 참 교회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귀한 보석, 벽옥, 수정 같다고 하죠. 이렇게 교회를 보석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보석의 속성’ 때문입니다. 보석의 제 1 속성은 ‘빛난다’ 이고 제 2 속성은 ‘가치있다.’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한 몸일 때 교회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님이 가진 빛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여 빛이 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12절을 보면 12문과 12천사가 있는데 이 문들의 이름이 12지파라고 하죠.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모두 ‘교회’를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12라는 숫자는 이 땅(4)에서 성부성자성령(3)하나님을 알게 된 자(4*3=12), 즉 참 교회를 일컫는 숫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 교회는 우리가 다니는 지역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동서남북 각각 한 개의 방향마다 3개씩 12문이 존재한다고 나오죠. 동서남북(4)은 이 땅을 가리키고 그 네 곳 중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하나님(3)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 세상 어떤 곳에 있더라도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12문을 참 교회라고 하죠.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과 한 몸일 때 교회가 되기 때문에 교회도 예수님의 정체성의 하나인 ‘문’이 되는 것입니다. 

 14절에는 12기초석과 12사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몇 번 반복하니 이제 해석이 쉽죠? 예수님의 정체성 중 ‘머릿돌’이 있죠. 교회는 머릿돌 되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12라는 교회를 12기초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란 예수님을 직접 보고 직접 가르침을 받은 12명을 말하는데 내용적으로는 성경에 나온 12사도지만 본질적으로는 참 교회 모두를 의미합니다. 참 교회에게 복음을 직접 가르치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15-16절을 보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측량하는데 그 길이가 12,000 스다디온이라고 나옵니다. 여기도 12죠? 그런데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같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천국에서는 모든 백성이 가치적으로 똑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에서는 절대 상급의 차이가 없습니다. 

 한 때 한국 교회는 이 세상에서 더 많은 봉사, 헌금, 전도를 하면 그 만큼 천국에 가서 더 많은 상급을 받는다고 가르쳤죠. 심지어 더 큰 평수의 천국 아파트를 받는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목사들도 있었습니다. 인본주의 종교 지도자들은 인본주의식 성과원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죠. 

 성경이 간혹 천국에서 상이 크다는 식으로 표현할 때가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을 하는 것들도 천국의 유일한 상급인 예수 그리스도에 비하여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유일무이한 상급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고로 평생 살인을 하다가 죽기 직전 복음을 알게 된 자나 평생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자나 그 가치를 측량하면 “똑같다”입니다. 길이, 너비, 높이 모두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공로와 업적은 가치가 '0'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뿐이죠. 

 17절, 성곽도 측량하니 144 규빗이죠. 144의 의미는 12*12=144입니다. 즉, 구약의 모든 선택받은 자들과 신약의 모든 선택받은 자들의 모임를 의미합니다. 즉, 모든 참 교회를 의미하죠. 

 구약의 노아의 방주도 4각형으로 3층이었습니다. 그래서 4*3=12 교회입니다. 이 방주의 꼭대기에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 달렸죠. 이것은 하나님과 소통을 의미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예수님께서 교회라는 방주(천국)를 지으시고(품에 안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심지어 천국을 다녀온 바울 조차 천국을 ‘삼층천’이라고 표현했죠. 요한도, 노아도, 바울도 모두 장소로써의 천국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교회의 영적 관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한한 인간에게 영적 언어로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알 수 있는 장소, 숫자, 물건의 개념으로 바꾸어서 설명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천국이라는 장소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교회를 품에 안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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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길을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