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21-22장은 천국에 대한 묘사입니다. 물론 그 천국은 우리가 앞으로 미래에 갈 천국을 의미하지만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기 때문에 이미 천국은 우리가 사는 인생 동안에 지어져갑니다.
고로 21-22장의 천국은 현재 나의 삶에 지어져 나가는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더 본질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으로 부터 나온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죠. 이 생명수 강은 ‘구원 역사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역사는 인간이 만든 인류의 역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사는 포장지일 뿐입니다. 진짜 역사는 인류의 역사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일명 구속사라고 하죠.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인류 역사 속 깊은 속에 도도히 흐르면서 태초에 선택받은 자들을 찾아서 그들을 구원합니다.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다니는 지역교회와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온전히 구원받은 참 교회를 12라는 숫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12가지 열매를 맺는다고 나오죠. 예수님이 생명의 본질이시고 그런 예수님께서 심고 키우신 12가지 열매들이 바로 참 교회입니다. ( 12는 동서남북(4)인 이 땅에서 성부성자성령(3) 하나님을 알게 된 자(4*3=12)라는 의미입니다. )
천국을 묘사하는 21-22장이 계속 12라는 숫자로 참 교회의 여러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시죠?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보시면서 이쪽으로 봐도 예쁘고, 저쪽으로 봐도 예쁘고, 앞쪽으로나 뒤쪽으로 봐도 아름답구나~~ 그러면서 그것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계시다는 뉘앙스가 느껴지시나요?
그 12가지 열매가 달린 나무 잎사귀들이 만국을 치료한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만국은 현재 우리가 속한 이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보면 이 땅은 이미 인간의 죄로 인하여 저주받았다고 나오죠. 그런데 선택받은 자들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면서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새 나라와 새 땅을 만든다는 설명입니다. 고로 천국은 저주가 없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예수님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이마에 예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예수님의 정체성’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머리(이마)는 오직 예수님을 소망하며 예수님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나는 각각 다른 지체이면서도 한 몸인데 이것을 이 세상의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이것을 설명하는 많은 표지판들을 만들어 놓으셨죠. 몇 가지 알아볼까요?
1. 동물과 다르게 사람은 남자를 먼저 창조한 후 그 남자의 몸 안에 있던 갈비뼈를 꺼내서 여자를 만드셔서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을 알리셨습니다.
( 교회의 원래 자리는 예수님의 품 속이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
2. 부부가 되면 서로 한 몸이 되는 관계로 만드셨습니다.
( 예수님과 교회는 서로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
3. 이렇게 부부가 되어 한 몸으로 합방을 할 때 즐거운 기분이 들도록 만드셨습니다.
( 예수님과 교회가 한 몸이 되면 행복한 천국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 교육을 할 때 조차 이런 복음의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
4. 이렇게 부부가 한 몸이 되면 ‘생명’이 탄생하도록 만드셨습니다.
( 예수님과 교회가 한 몸이 될 때 교회가 새로운 생명을 얻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5. 인간이 아이를 낳게 되면 한 인간이 둘로 분리되는 것 (뱃속 아이의 분리)
( 아이를 낳는 것은 인본주의에서는 축복이지만 복음적으로는 저주의 요소가 포함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예수님)을 배신하고 분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율법을 보면, 여자가 아이를 낳게 되면 7일간 저주 받은 상태라고 하여 분리시켜 놓습니다. 심지어 여자 아이를 낳게 되면 7+7=14, 즉 두 배로 저주 받은 상태라고 합니다. 미래에 다시 아이를 낳는 여자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무섭죠? )
6. 사람이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모든 과정은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모든 과정을 설명합니다. 아기일 때 전적으로 부모를 의지하는 기간은 에덴동산의 기간이고, 이후 아기가 자라 아동, 청소년이 되면서 자신의 기준이 생겨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다 자란 자식이 스스로 독립하여 부모를 떠나는 것은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 이후의 인류가 죄인이 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모든 인류 역사를 의미하죠. 아이를 키우는 참 목적이 이렇게 복음의 핵심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놀랍죠?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이의 성장과정을 여자의 잉태와 해산의 고통으로 미리 예고합니다. 완전수 10개월의 어려움은 아이를 키우는데 완전한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고하는 것이고 해산의 아픔은 그 아이가 부모에게서 분리될 때 부모가 가슴아퍼할 것을 예고하는 의미죠. 그런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놀랍죠?
이 모든 것을 유심히 살펴보면 결국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고 지금도 이 천국, 즉 이 관계는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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