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다시 한 번 방향성을 짚고 갑니다. 복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것은 ‘방향’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방향이 아닌 ‘얼마나 했는가? 얼마나 갔는가? 얼마나 드렸는가?’ 에 집중하죠.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가장 무서운 점은 점점 더 ‘옳은 길’에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열심 때문에 오히려 복음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되죠.
복음은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예수 그리스도)로 방향을 트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후 나아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견인하는 것이죠. 심지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수시로 우리의 방향을 예수님께 돌려 놓는 것입니다.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서 복음의 목표를 이루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되어 우리가 홀로 걷던 방향을 틀어 예수님의 등에 엎혀 예수님의 등과 얼굴만 쳐다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믿음의 경기를 하라는 것은 골인지점에 예수님을 세워두고 그곳을 목표로 뛰어가라는 말이 아니라 믿음의 경기를 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등에 엎히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경기는 예수님 홀로 하십니다. 예수님을 이것을 두고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하셨죠. 그 전의 우리는 항상 무거운 짐을 지고 뛰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옛 자아는 이런 나를 가만히 나두지 않죠. 다시 인본주의 사슬로 나를 묶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로 하여금 인본주의 가치를 쫓는 경주를 하게 합니다. 돈(의식주)을 쫓게 하고 권력(명예,인기)을 쫓게 하고 종교를 쫓게 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귀신 들린 것’입니다. 귀신에 들려서 오직 귀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인본주의에 묶여 오직 인본주의가 가리키는 가치만을 따르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종 ‘귀신 쫓는 사역’을 펼치시므로 우리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본주의 포로로 묶여 있는 선택받은 자들을 그 인본주의 사슬에서 풀어 구원하러 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죠.
그런데 24절을 보면 귀신이 예수님을 정확히 알아보고 두려워하죠. 그래서 인본주의의 본질적 실체는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사탄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탄이 나오고 그 사탄에게 힘을 받은 짐승이 나오는데 이때 이 짐승의 정체가 실체화 된 인본주의입니다. 그리고 이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가 우리의 옛 자아입니다. 결국 “사탄-인본주의-나의 옛 자아“ 이 셋은 삼위일체 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2:2-3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중요한 것은 귀신이 이 세상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의도를 거슬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선택받은 자들을 찾아서 인본주의 사슬을 풀어 구원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귀신들린 자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죠?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소개하죠.
회당은 장막, 성막, 성전과 같이 예수님의 품을 의미합니다. 고로 회당에 있는 사람이란 태초에 이미 예수님의 신부로 택함받은 자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무작위로 사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을 정확히 찾아내신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마지막 28절에도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진다고 나오는데 이것도 단순한 역사적 배경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결국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속 퍼질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온 지구상에 예수님의 복음은 계속 흐르고 있는데 이것을 이미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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