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진행중)

마가복음2:23-28(25.01.17.금)

은혜바라기 2025. 1. 17. 08:12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오늘은 안식일에 관한 묵상입니다. 

 안식일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의 진정한 정체성을 오해하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다른 길에서 인본주의 종교라는 바벨탑을 쌓고 있죠. 구약의 모든 것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그 중에서 안식일은 '날짜'라는 도구로 예수님을 가리켜서 복음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을, 신약시대에는 일요일을 신성한 날로 정해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날짜를 신성시한 우상의 형태일 뿐입니다. 

 안식일의 진정한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로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품 안에서 그 위치를 반드시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품 안의 위치를 지키라는 것도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그렇게 성령께서 우리를 견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식일에 어떠한 일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홀로 완성하기기 때문에 그 누구도 구원의 공로에 1도 더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우리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품 안에서 짐을 내려놓고 쉬라는 의미죠.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는 것을 알미니안주의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 때 내가 손을 내밀어 잡아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죠. 이런 생각은 인과율에 묶여 있는 인본주의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불가항력적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하겠다고 작정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은혜로 구원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태초에 예정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율법을 보면 6일 동안은 열심히 일을 하라고 나옵니다. 이것을 열심히, 성실히, 근면하게 일하라~~ 라는 '노력'의 의미로 받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은 온 우주가 순종하는 방향성을 갖기 때문에 우리는 6일 동안 열심히, 성실히, 근면하게 일하는 방향성을 가지게 되지만 이 구절은 좀 더 깊은 본질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근본적 의미는 복음을 아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식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복된 소식을 알려면 그 전제 조건이 내가 복 되지 않고 저주받아 비참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본질은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서 인간 본위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인간들끼리는 인본주의에 이로운 삶을 ‘선’이라고 칭하지만 복음에 있어서는 인본주의 자체가 '악'입니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스스로 만든 바벨탑이며 그 바벨탑을 열심히, 성실히, 근면하게 쌓아 올릴 때 행복(천국)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열심히 일하라는 것은 너희가 할 수 있는 인본주의 바벨탑을 열심히 쌓아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숫자 ‘6’도 정확하게 인본주의를 가리키는 숫자죠. 고로 인간은 자신의 일생 동안 인본주의 가치를 열심히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자들은 성령의 견인으로 인하여 이 인본주의 가치가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 속 가치 붕괴가 일어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난 자들을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애통한 자가 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서야 비로서 복음이 복된 소식으로 들리면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며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저주 받은 나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는 복된 소식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나의 죄를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절대 나의 행위와 노력을 통해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짓된 나의 의만 나타날 뿐이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안식일 율법을 단지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여 6일은 일하고 나머지 하루를 쉴 때 반드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하면서 손으로 이삭을 자르는 것을 추수하는 행위로 보고 단죄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눈이 열린 분들은 이 상황이 얼마나  코미디같은지 아시겠죠? 그런데 조금 더 복음의 눈이 크게 열리면 지금 우리도 이런 코미디같은 '주일성수' 생각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 행태에 대하여 다윗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었던 에피소드를 예로 듭니다. 이 의미를 해석해보죠.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이 에피소드의 핵심은 모든 율법은 실체이신 예수님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실체가  배고프면 얼마든지 도구(상징, 떡)를 먹고, 마시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27절에서 이렇게 부연설명하셨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즉, 안식일의 모든 율법이 사람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율법 시스템 때문에 도리어 사람이 그 안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8절에서는 더 확고한 설명을 합니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입니다. 안식일이 설명하는 진정한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P.S
** 홈페이지 처음에 보면, 지난 묵상과 특별 묵상이 포스팅 되어 있습니다.
** 핸드폰에서는 첫 화면 중간에 보시면 “분류 전체 보기”를 보시면 됩니다. 
**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길을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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