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진행중)

마가복음3:20-29(25.02.03.월)

은혜바라기 2025. 2. 3. 08:25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바리새인과 서기관 뿐 아니라 예수님의 친족들까지 예수님을 배척하는 장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장면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준비하셨다는 것을 인지하고 읽어 내려가야 합니다. 

 이 장면은 선택받은 사람들도 복음을 알게 되어 인본주의 가치가 상실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소망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으로 인하여 친지들에게 조차 배척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보면, 복음을 알게 된 야곱이 마지막 유언을 할 때 자신의 자녀들에게 거의 저주와 같은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자녀들의 성품 상 그런 인생을 살아가야 복음을 알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택받은 자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성공만을 거둘 때 그리 달가워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실패와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필요성을 알아갈 때 매우 기뻐하죠.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복음을 알지 못하는 가족과 친지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합니다. 박해할 뿐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자신의 동네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씀도 하셨죠. 

 이렇게 인본주의 가치관과 복음의 가치관은 항상 대립합니다.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우리가 인본주의 가치만을 따라 사는 모습은 흡사 귀신들려서 귀신을 쫓아 사는 것과 같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자주 귀신을 쫓는 이적을 보이시면서 복음을 설명하신 것이죠. 

 그런데 반대로 인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예수님과 복음을 알게 된 자들이 마치 귀신들린 것처럼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생각을 이용해서 다시 한 번 복음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가 없다고 하시죠.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망한다고 합니다. 이 의미는 인본주의 내에서 인본주의를 배척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자세히 풀면, 죄의 본질은 인본주의 그 자체입니다. 그런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한 인본주의 악에서 인본주의 선으로 이동은 할 수 있을 망정 인본주의 자체를 ‘악’으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자체를 ‘악’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인본주의 밖에 있는 어떤 존재의 힘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 분은 유일하게 인본주의 밖에 계신 분으로 이 인본주의 내로 들어와서 사탄의 머리를 밟으시고 그 분이 선택한 자들을 빼앗아(강탈) 온다는 것이 27절입니다. 즉,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고 칭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만이 귀신의 집(인본주의)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이며 자신만이 홀로 이 귀신의 집에 들어와 귀신의 왕인 사탄의 머리를 밟으시고 원래 그 분에게 속해 있던 그 분의 신부를 구원(강탈)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모든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성령 모독죄는 사함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죠. 그 이유는 성령님의 역할에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할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 훼방하는 것, 즉 복음을 알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복음을 알게 되는 증상이 없다면 절대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성령의 견인으로 인하여 복음을 알게 되는 증상이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끝 

'마가복음(진행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3:30-35(25.02.04.화)  (0) 2025.02.04
마가복음3:19(25.01.24.금)  (1) 2025.01.24
마가복음3:13-19(25.01.23.목)  (1) 2025.01.23
마가복음3:11-12(25.01.22.수)  (1) 2025.01.22
마가복음3:7-10(25.01.21.화)  (1) 2025.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