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진행중)

마가복음4:1-20(24.02.05.수)

은혜바라기 2025. 2. 5. 08:07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 가장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특히 이 비유는 비유를 다시 상세히 풀어 설명해주신 독특하고도 매우 값진 비유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은 이 씨 뿌리는 비유를 길가, 돌밭, 가시떨기 땅이 되지 말고 좋은 땅이 되도록 노력하자~~ 로 해석하게 되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입니다. 

 복음의 눈으로 씨 뿌리는 비유를 읽게 되면 길가, 돌밭, 가시떨기 땅은 절대 좋은 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즉, 이 비유는 나쁜 땅을 좋은 땅으로 변화시키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쁜 땅은 절대 좋은 땅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3가지 나쁜 땅이며 그 땅의 증상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기된 자들에게 단 1의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잘 가르쳐서 반성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구원을 얻게 하려 한다는 것이 정확하게 ‘인본주의 종교’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 들어 있는 복음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 알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1-12절을 보면, 복음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 준 것이고 외인(유기된 자)에게는 비유로 하여 그들이 절대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죠. 매우 무섭죠? 이제 약간 어려워집니다. 집중하세요. 

 유기된 자들은 말씀 속 비유의 본질을 이해 할 수 없고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 비유 안에 들어 있는 복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오늘의 비유를 예수님께서 다시 풀어 해석하시는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집중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따로 비유를 풀어 해석한 이유는 이후에도 이 글을 읽은 우리들, 즉 선택받은 자들에게 성령께서 성경을 다시 풀어 그 안에 들어 있는 복음을 해석해 주신다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씨 뿌리는 비유를 나중에 제자들에게 해석한 부분도 사실 비유로 포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석하신 부분을 복음으로 다시 풀어 보겠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땅은 유기된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를 의미합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옛 자아의 삶을 살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즉시 빼앗기고,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지만 곧 환난과 박해가 오면 넘어지고, 그것을 견딘다고 해도 결국 세상의 염려와 유혹 그리고 욕심 때문에 결실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 즉 나쁜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땅의 진정한 정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절을 보면, 좋은 땅에 씨가 뿌려져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 결실이 바로 ‘우리’입니다. 즉 말씀 되신 예수님께서 인자 예수님으로 오셔서 선택받은 자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완전수100) 모두 결실(구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1차적으로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이 말씀이 결국 예수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나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구원은 결국 예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고로 복음의 구조적 메커니즘은 "나=예수님=나=예수님" 의 한 몸 구조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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