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5:17-20(21.08.20.금)

은혜바라기 2021. 8. 20. 09:35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율법은 613가지(기타 세부 유전까지 치면 2134개)나 되죠.  율법의 속성은 '완전함(온전함)'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말씀)이 완벽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바로 십계명이죠. 1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함'을 가리키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율법을 주신 표면적 이유는 그것을 잘 지켜서 천국에 도달하라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적 의미는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 복음의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표면상 인간은 율법을 그런 저런 모양으로 잘 지켜내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죠.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많이 다른 결과겠죠? 그런데 그렇게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의 기준으로 하향 조정하거나 비교 우위적 방식으로 바꾸어서 지켜내는 것이죠. 

 

 즉, '살인하지말라'하는 율법의 하나님의 기준은 '형제에게 화내는 것도 살인'인데 인간의 기준은 '살심을 가지고 타인을 칼로 찔려 죽이는 것'으로 '하향조정'해서 바꾸어 놓은 것이죠. 그렇게 하향조정된 율법을 지켜내므로 '나는 저렇게 직접 살인한 자들 보다는 훨씬 율법을 잘 지키고 있어'라고 비교 우위적 방식으로 율법을 지켜내죠. 

 

  '간음하지말라'라는 율법의 하나님의 기준은 '지나가는 어떤 여자에게라도 마음으로 음심을 품지말라'인데 인간의 기준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직접적인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하향조정'해서 바꾸어 놓은 것이죠. 그래서 TV에서 성추행의 여러 모습들이 나오면 '나는 저 정도는 아냐. 나는 저들보다는 훨씬 깨끗한 삶을 살고 있어'라고 비교 우위적 방식으로 율법을 지켜내고 있다는 착각속에 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말씀(율법)의 기준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다시 설명하시겠다는 말이죠. '너희가 오해하여 너희 기준대로 바꾸어 놓은 율법을 다시 하나님의 기준대로 온전하게 가르쳐 주겠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인간의 기준에 따라, 혹은 인간의 행위 능력에 따라 바꾸면 안된다라는 뜻이 바로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라로 가르치시는 부분이죠. 그러면 과연 이렇게 기준이 높은(완전한) 율법을 누가 지켜서 천국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이 땅에 계획되었죠.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오직 그 분만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죠. 그것을 믿는 자만이 그 분의 신부가 되어서 천국에 딸려(공짜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음에 바로 '다 이루리라'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이말을 다시 연결해서 풀어보면 '율법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풀어야하며, 이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끌어 내리지 말아야한다. 이렇게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바뀌지 아니한다면 그 누구도 율법을 지켜낼 수가 없단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다 이룰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도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는 말씀도 '율법을 인간의 기준으로 끌어 내리면 안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로 연결되어 나온 말씀이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이죠. 이렇게 온전한 말씀 즉, 하나님의 기준으로 가르치는 자는 오직 예수님뿐이죠. 그래서 오직 천국은 예수님만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작다와 크다'의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대적인 의미의 작다와 크다의 개념이 아닙니다. 작다 = 전무, 크다 = 전부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작다고 여김받는다라는 것을 천국에는 갈 자가 없다라고 해야하는데 왜 이렇게 오해할 만한 표현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결국 이중에는 예수님의 신부로 즉, 예수님의 은혜로 천국에 딸려 올라가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제로는 없지만(전무) 은혜로 예수님에게 딸려 올라가는 자가 있기 때문에 '없다'라는 표현보다 '작다'라는 표현을 쓰신 것이죠. 어렵죠?

 

 오늘 마지막 말씀이 방점을 찍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에 대하여 오해를 하시면 안됩니다. 이들의 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의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관점에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복음적으로 바리새인의 죄를 계속 드러내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려고 하시죠.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인이 매우 나쁜 인간들로 나오지만 실제로 바리새인의 의는 인본주의의 최상의 꼭대기에 있는 의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즉, 지금 현대 사람들에게 '가장 휼륭한 사람을 말해보시오. '라고 말하면 누구나 거론되는 사람들이 있죠?  우리는 그들을 매우 휼륭한 사람들이라고 하죠.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2-3일씩 금식하면서 그 아낀 돈으로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던 자들이었습니다. 그 밖에 말씀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한 노력들은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정도로 힘겹죠. 그리고 그들이 성전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순교는 매우 빈번하게 나타났죠. 이들의 의로운 활동은 우리가 그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에 가기 위해 '이 자들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갈 수 없다'라고 선언하시죠. 그 말은 그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말은 인간의 의는 아무리 최고의 의를 행한다하더라도 그것이 '의'가 아니라는 말도 됩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최고의 욕을 하면서 그들을 피하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게 되었죠. 

 

 우리가 알고 있는 인본주의 종교로써의 기독교와 복음의 눈으로 보는 기독교는 이렇게 반대방향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복음에 눈을 뜨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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