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이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라가’라고 욕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죠. ‘라가’라는 말은 ‘머리가 텅빈 놈(멍충이)’이라는 뜻의 가벼운 욕입니다. 과연 이 말씀의 요지는 무엇일까요? 과연 하나님이 보시는 살인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살인의 개념은 하나님의 살인의 개념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화냄과 욕함’의 앞에 ‘형제’라는 단어는 매우 강력한 촛점입니다. 우리가 형제에게 ‘화냄.욕함’을 하는 것은 형제와 나를 분리시키는 행위가 됩니다. 이것은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과도 그 요지가 같은 것이죠. 즉, 우리가 형제에게 ‘화냄,욕함,비판’을 하면 그 행위는 바로 ‘저런 행동을 하다니!!! 나는 그 형제와 달라!!!(분리)’라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이것이 말씀의 주요 핵심입니다.
살인은 바로 나와 형제를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이죠. 즉, 살인을 함으로 인해서 그 형제를 완벽하게 이 세상에서 나와 분리하는 것입니다. 살인은 분리의 끝판왕인 셈입니다. 그리고 ‘화냄,욕함,비판.은 형제와 나를 분리하려는 출발선인 셈이죠. 그래서 살인과 ’화냄,욕함‘은 같은 계명인 것입니다. ’형제를 분리시키는 것‘이 바로 가장 큰 죄가 되죠. 이것과 반대의 말씀이 바로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 형제의 정체가 누구일까요? 옆집 사람? 아니면 같은 교인? 아니면 가족? 물론 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부 다 실체적 형제가 아닌 상징적 형제로 봐야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형제는 오직 딱 한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설명하면 바로 ‘나의 형제는 하나님(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먹고 죄인이 되었죠. 그렇다면 ‘죄인이 되었다’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결과론적인 의미로 설명드리면 바로 ‘하나님과 분리’된 것입니다. 죄를 히브리어로 정의하면 ‘과녁에서 벗어났다’라는 말이죠. 이것이 바로 ‘과녁(하나님)과 분리됨’을 뜻합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아내시는 장면이 있죠. 이 모양은 우리에게 그 무엇을 설명하려는, 사실을 담은 상징적 에피소드입니다. 그 사실 자체가 무엇을 설명하는 상징이라는 것이죠. ‘에덴에서 쫓아냄’은 바로 ‘에덴에서 분리’를 뜻합니다.
이제 정확히 아셨죠? 형제는 하나님(예수님)이며, 살인하지 말라는 ‘분리하지 말라’입니다. 이것을 연결한면 “예수님(하나님)과 분리하지 말라”입니다. 이미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은 그 때 우리가 저지른 죄죠.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만이 우리의 구원이 되죠. 그런데 우리는 ‘살인하지 않기’ 즉, ‘칼로 사람을 죽이기 않기’를 노력하는 신앙 생활을 하죠. 그리고 그것을 잘 지키고 있다는 착각속에 신앙생활을 하죠. 그것의 정점에 있던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이었죠. 그래서 그 계명의 요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화냄.욕함이 곧 살인이다' 라고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하나님과 분리된 시점을 묵상시키려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시죠. 이런 복음의 방향성으로 그 다음 구절을 보시면 왜 이런 말씀을 연결해서 하시는지 정확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을, 예배를 드리려는데 형제와 싸웠다면 먼저 형제와 화해한 후에 예배를 드리라는 순서적 우위에 대한 말씀으로 묶어 버리면 안됩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바로 ’하나님과의 화해(화평,화목)‘을 뜻합니다. 즉, 죄로 인해서 분리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평(화해,화목)하게 하지 않으면 어떤 예배도 소용없음을 뜻합니다. 물론 이 때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화평을 완성할 수 있죠.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여기서 ‘너를 고발하는 자’는 바로 심판의 주도권을 가진 자를 뜻하죠. 즉,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하나님)과 화평을 하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으라는 뜻이죠. 그렇지 않으면 재판관(성부 하나님)의 진정한 심판(지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죠.
오늘의 말씀도 인본주의 종교에서는 그냥 ‘형제에게 화내지 말고 잘 지내라’는 뜻으로 대부분 설교를 하게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묶여서 그 말씀의 본질을 보지 못하면 복음의 진영으로 들어갈 수가 없죠. 그 길을 ‘눈먼 자’들이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