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18:18-23(22.09.28.수)

은혜바라기 2022. 9. 28. 08:37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다시 만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을 다시 등장시킨 이유는 이 두 부부와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함께 한 배경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천막 만드는 것을 ‘목사가 스스로 돈을 벌면서 목회나 선교를 해도 된다. 하면 안 된다. 즉, 자비량 선교(목회)가 더 훌륭하다. 혹은 그렇지 않다. ~~’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초점을 한참 벗어난 것입니다.

 천막은 장막을 뜻하고 장막은 성막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성막은 천국을 뜻하죠. 즉, 지금 바울은 ‘천국 만드는 사람’의 역할을 수행 중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표지판일 뿐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관계의 개념이죠. 즉, 예수님과 지체가 되는 관계를 천국이라고 합니다. 고로 예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그 분의 지체로 인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울의 ‘천막 만드는 일(tent maker)’을 가져와서 성령께서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하죠. 이런 일은 하고 있는 바울은 위대한가요? 절대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바울은 그냥 도구일 뿐입니다. 단 1도 공헌도가 없습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복음에 조금 눈이 뜨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늘 18절에서 바울이 머리를 깍는 장면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서 말씀 두 구절을 보죠. 

 “민6:9상 "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민6:12하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

 조금 어렵죠? 그리고 이 머리를 미는 행위를 더 자세히 알려면 ‘나실인’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나실인’이란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과 구별하여 말씀(복음)에 귀속하여 살겠다는 것을 서원한 자를 말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정확하게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실인이 되면 1.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을 것  2.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을 것 3.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을 것 이 세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결국 이 세 가지 모두 인본주의와의 분리를 뜻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서원을 했으므로 머리를 밀었다고 나오죠? 즉, 바울은 나실인의 서원을 해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에 보면, 나실인이 더럽혀지면 그 머리를 다 밀어야 한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머리를 민 것입니다. '바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중요했다면 성경은 그 이유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이유가 없죠. 즉, 우리도 그것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과율이 없는 문장이 가끔 등장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죠. 그런데 그것은 성령께서 일부러 가려버리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초점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초점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만약 여기에 바울이 나실인으로써 어떤 부정한 것을 행한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면 우리는 ‘아~~ 바울이 이런 잘못을 해서 머리를 밀었구나~~ 나도 그런 잘못을 하지 말아야지~~~’ 라는 행위의 초점으로 이동할 수가 있겠죠. 성령께서는 그것을 강하게 억제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의 초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민수기 6장12절 하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이니라’입니다. 나실인이 일정한 기간을 정해 정결한 삶을 유지하다가 부정한 시체에 접촉하면 머리를 전부 깎으면서 그 이전의 지나간 모든 기간은 무효가 됩니다.  

 즉,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초점은 바울의 모든 행위는 무효라는 것입니다. 이 초점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지금 바울은 광폭의 움직임을 보이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로 따지면 영웅으로 발돋움하고 있죠. 즉, 바울의 업적이 쌓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령께서 “전부 다 무효~~~”라는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재미있죠? 

 

 정말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80평생을 교회에 헌신하면서 살았던 크리스천이 있다고 예를 들어보죠. 이 사람은 죽기 전에 그 자신의 헌신적이 삶을 돌아보면서 '다 무효입니다.'라는 선언을 하고 죽어야 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다 무효일 수밖에 없구나~'라는 진정한 이해를 하고 죽어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이해가 안 된다면 그 사람은 복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모든 공로는 전부 다 예수님께 있다는 진리를 겉으로만 이해하면서 사신 분인 것이죠. 

 왜 이렇게 성령께서는 제동을 걸까요? 이것은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을 영웅화시키죠. 그런데 그 실상의 본질은 바로 ‘나’의 영웅화입니다. 내가 교회의 꼭대기(혹은 회사의 꼭대기)에 높이 서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포츠 스타 혹은 노래하는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나도 그런 자리에 올라서서 그런 실력을 갖고 그런 대우를 받고 싶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복음에 있어서 매우 엄격합니다. 오직 복음은 예수님 홀로 이루신 것이며 인간의 그 어떤 영향력도 다 무효로 만들어 버리시죠. 우리는 그것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바울에 대한 ‘무효선언’은 지난 업적뿐 아니라 앞으로 나올 업적에도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9절 이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전도하는 모든 행위의 초점은 바울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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