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18:12-17(22.09.27.화)

은혜바라기 2022. 9. 27. 08:28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오늘의 말씀도 제대로 묵상하려면 이 에피소드를 성령께서 성경에 기록하셨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성령님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아야한다는 것이죠. 

 오늘의 주제는 ‘복음은 절대로 인본주의로 판단(재판)할 수 없다.’입니다. 성령께서는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늘 이 에피소드를 성경에 기록하신 것이죠. 이것을 조금 더 자세히 묵상하기 위해 다른 말씀을 한번 더 보겠습니다. 

 “고전6:1-3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오늘의 말씀과 고전6장의 말씀은 완벽하게 똑같은 말씀입니다. 재미있는 관점이 있죠? 즉, 성령께서는 똑같은 복음의 핵심을 가르치시는데 한편에서는 복음의 진영에 우뚝 선 바울을 사용하시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방인들의 주역인 로마 총독 갈리오를 사용하시죠.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만 하나님의 복음이 있을 것이라는 좁은 시야를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복음의 도구일 뿐입니다. 드라마, 뉴스, 우주, 지구, 곤충, 수학, 자녀, 코로나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전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움직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전부 다 복음을 설명하는 방향성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이 죄에 눈멀고 어리석게 되어서 그것을 볼 수 없고 듣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즉, 지혜가 없기 때문이죠. 

 ‘지혜’가 뭘까요? 지혜의 본질은 뭘까요? 지혜의 본질은 “잘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의 본질입니다. 지혜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솔로몬”이죠?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라는 것을 선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솔로몬이라는 이름의 뜻은 ‘평강’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할 것이라고 언약하셨죠. 즉, 솔로몬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솔로몬이 평강이라는 이름으로, 다윗의 자녀로, 왕의 신분으로, 지혜의 왕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선물받자마자 성경은 매우 유명한 에피소드를 기록합니다. 바로 ‘두 창녀의 아이를 반으로 쪼개라’는 에피소드죠. 두 창녀 중 한 창녀의 아이가 죽자 다른 창녀가 시기하여 그 아이가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두 창녀는 솔로몬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죠. 그런데 솔로몬이 그 아이를 반으로 쪼개라고 하자 진짜 엄마가 ‘그러지 마소서’라고 하면서 진짜 엄마가 가려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선물 받은 직 후 첫 에피소드입니다. 진짜 지혜로운 왕이 되었구나~~ 라며 감탄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즉, 지혜의 본질이 바로 ‘잘 듣는 것’이라는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이유를 눈치채셨나요? 이때 솔로몬 왕국은 거의 제국의 수준으로 이스라엘이 가장 부강한 때였습니다. 높은 관리들조차도 감히 솔로몬을 함부로 볼 수 없는 때였죠. 그런데 창녀가 솔로몬 앞까지 와서 이야기를 하고 솔로몬은 그것을 ‘전부 다 잘~ 듣습니다.’ 이것이 이 에피소드의 진짜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본질은 뭘까요? 지혜란 바로 ‘복음을 잘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죠. 그래서 지혜의 근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방향성에서의 지혜는 바로 복음을 잘 듣는 것이 됩니다. 

 참고로, 그렇다면 ‘명철’이라는 것은 뭘까요? 명철은 잘 들은 복음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잠언서는 지혜와 명철을 수 없이 강조하죠. 이 세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지혜와 명철을 풀어서 설명하면서 그 지혜와 명철이 얼마나 좋은가?를 계속 설명하는 것이 잠언서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잘 듣고(지혜), 복음을 유지하는 것(명철)’을 기록한 것이 잠언서이며, 궁극적으로는 성경 전체 말씀입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조금 멀리 와 버렸네요. 오늘의 주제만 기억하세요. ‘복음은 절대 이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재판)할 수 없다.’입니다. 

 마지막 17절에서 보면, (복음을 반대하는)유대인들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서 때립니다. 그런데 로마 총독 갈리오는 끝까지 이 일을 상관하지 않는 것으로 에피소드를 끝내죠. 이것도 앞의 주제에 대한 강조법입니다. 지금(말세)은 영적 전쟁의 시대입니다. 진리의 전쟁터라고 할 수 있죠. 가장 치열한 전쟁터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 말씀이 떨어지면 이것을 복음으로 이해하는 자들과 인본주의 종교로 이해하는 자들로 분리가 됩니다.(제 생각에는 1:99의 비율도 안될 듯싶네요)

 그러나 이것은 사람과 사람으로 분리가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선택받은 자들의 내면의 분리와 싸움을 가리키는 것이 본질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유기된 자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 즉, 나의 옛 자아와 나의 거듭난 자아의 싸움을 가리킵니다. 이 싸움 방식은 기존 세상의 법칙(논리)으로 저울질할 수가 없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오직 이 싸움은 예수님께만 관여하실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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