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세상은 전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음행의 본질은 교회가 하나님을 떠나 인본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남편이신 하나님 예수를 떠나 인본주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죠.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본능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서로에게 감사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그 둘이 다른 남자와 여자를 사랑할 때 매우 큰 질투를 느낄 수 있는 마음까지 창조하셨습니다. 이 질투는 살인을 할 정도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분노 중 가장 큽니다. 그래서 인간은 분륜을 도덕법 혹은 성문법으로 금지시켜 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 조차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예수님의 상징이고 여자는 교회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을 떠난 교회는 하나님의 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인간에게 ‘질투심’으로 심어 놓으심으로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예수님)을 떠난 인간의 분륜 대상은 ‘인본주의’입니다. 이것이 바로 ‘음행’의 진 면목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음행하고 있는 교회(선택받은 자들)를 다시 찾기 위해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셨죠. 이것을 직접적으로 다룬 성경이 호세아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날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를 찾아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죠. 그래서 선지자 호세아는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자식들을 낳죠. 호세아(혹은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헬라어 표기가 ‘예수’입니다.
호세아의 자식들의 이름의 의미를 나열하면, 첫째는 ‘이스라엘을 폐할 것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너는 내 백성이 아니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아니다’입니다. 무시 무시하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호세아1장 10절에서 ‘그러나 너희는 수는 많아 질 것이며 너희는 결국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다’라는 용서와 구원의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은 이렇게 모두 '복음'만을 설명합니다.
오늘도 본문을 잘 보셔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나오죠. 이게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절대 회개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그래서 22절부터 보면, 매우 무서운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2절에 나온 침상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고통의 침상’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이세벨은 고통의 침상에 던져 지고 이세벨과 간음한 자들은 환난 가운데 던져 지고 자녀들은 사망으로 죽는다고 하시죠.
우리는 모두 이렇게 고난과 죽음에 던져져야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는 이렇게 고통의 침상(나무=십자가를 의미)에 던져져서 최고의 형벌이라는 의미의 십자가 고난을 받고 사망으로 죽어야 하죠.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되었나요? 구원받았. 우리 대신 누가 그런 고난과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신랑 예수님이시죠.
그런데 이렇게 우리 대신 십자가(나무)에 던져져 환난을 받고 사망하신 예수님께서 24절에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보세요.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고 하시죠. 우리가 짊어지어야 할 모든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지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게 뭘까요? 예수님의 방향에서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우리의 방향에서 보면 '복음'입니다.
심지어 26절을 보면, 우리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28절 새벽 별을 주신다고 하시죠. 새벽 별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으로 옷 입힌다는 의미죠.
하지만 29절을 보면, 이 모든 것은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 즉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24절에 나와 있는 ‘남아 있는 자’에 해당되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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