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계3:10(24.07.25.목)

은혜바라기 2024. 7. 25. 08:41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반복 서론 : 일곱 교회는 일곱 개의 각기 다른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7이라는 숫자는 복음에서 ‘완전함’을 의미하므로 ‘완전하게 구원받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즉, 일곱 교회는 ‘구원받은 나’입니다. 고로 각각의 교회마다 칭찬과 책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있는 동안 겪게 되는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열심히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이 방향성을 잃지 마시고 묵상하세요. ))

 우리는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를 가지고 온전하게 지켜내지 못합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김집사와 박집사 보다 조금 더 인내하여 지켰다고 스스로 위로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모두 탈락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라고 선언해 주실까요?  바로 나는 예수님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인내의 말씀을 완전하고 온전하게 지키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자신의 살을 나에게 먹이시고 자신의 피로 나의 죄를 덮으셔서 감추셨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예수님의 피와 살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인내로 내 말을 잘 지켰구나~~’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만을 바라보고 소망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 소망할 뿐입니다. 애굽의 10대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죽음 시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은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문설주) 안에 숨어 있어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종교는 '내가 문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해 보겠다~~' 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복음은 '예수님 안에 숨어서 그 분만 의지하는 것~~'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죠. 

 이렇게 예수님의 피 안에 숨어 있는 자들에게, 10절 중반절을 보면,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는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켜주심’만이 나의 소망이라는 것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보통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공로 쌓기 혹은 신앙 쌓기라는 종교생활을 하게 되죠. 심지어 예수님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복음을 배우던 제자들 조차 자기들이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예수님께 ‘그렇다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선택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의 촛점은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앎'에 있습니다. 믿는 마음은 '본질적 앎'을 알게 될 때 찾아오는 결과론적 증상같은 것 뿐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성령께 배워서 복음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렇구나~~'라는 믿음이 생기죠. 그래서 믿음은 그 '증상적 마음'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 앎(복음)이 찾아 왔는가? 아닌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이 본질적 앎이 없는 자들은 '믿음'을 마음으로 생각하여 '믿음을 다잡아보자~~' '믿음이 전과 같이 않은데~~' '요즘 믿음이 약해졌어~~'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죠. 그들은 '불로~~ 불로~~'라는 찬양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아야만 믿음이 올라가는 경험을 하면서 그 신앙적 행위에 의지합니다.

 

 하지만 본질적 앎은 장님이 눈을 떠서 장미의 색깔이 빨간 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빨간 색을 보고 잠시 감정이 겪해지는 경험을 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이 초점이 아닙니다. 장미가 빨간 색이라는 것은 내 마음과 상관없이 평생 없어지지 않을 '앎'으로 내 안에 자리잡습니다. 

 이후 10절 후반절을 보면, 시험이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한다고 합니다. 언제일까요? 미래의 어느 순가??  예수님 재림의 순간?? 아닙니다. 물론 미래에 어느 순간에 그런 일이 발생하겠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의 모든 사건은 우리의 인생 중 계속 일어나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 까지 시험받게 됩니다. 노아의 방주 때 모든 사람이 다 죽은 후 새로운 세상(천국을 의미)이 열리고, 이스라엘 1세대 60만명이 광야에서 다 죽은 후 오직 2세대들만 가나안(천국을 의미)에 들어가고, 이스라엘이 모두 망해서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70년이 지나야 다시 새로운 성전(천국을 의미)이 만들어 지고, 구약이 완전히 끝나고 말씀이 중지된 완전 암흑의 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예수님(천국을 의미)이 오셔서 모든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천국의 시대를 만드셨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죄를 품고 있는 60만개의 나의 옛 자아를 다 죽이는 시험을 치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고 선언하셨으므로 이미 그것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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