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 반복 서론 : 일곱 교회는 일곱 개의 각기 다른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7이라는 숫자는 복음에서 ‘완전함’을 의미하므로 ‘완전하게 구원받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즉, 일곱 교회는 ‘구원받은 나’입니다. 고로 각각의 교회마다 칭찬과 책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있는 동안 겪게 되는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열심히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이 방향성을 잃지 마시고 묵상하세요. ))
9절에 나온, ‘사탄의 회당’은 종교 그 자체를 말합니다. 또한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크리스찬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이 모두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완성하신 순간 성전의 휘장을 둘로 갈라버리셨죠.
계속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절대 종교를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죄인이 된 이후 나타난 증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된 죄인의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것을 인본주의적 방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종교입니다. 우상(신)을 만들고 인본주의 기준으로 율법을 마춘 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지극정성을 보이면 감동하는 것을 우상(신)에게 적용하여 우상(신)에게 지극정성으로 봉사합니다. 이것은 기독교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선하게 창조 되었지만 이미 모든 것이 죄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선한 것은 단 한 개도 없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사용해서 복음을 설명하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신 도구가 ‘종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출발점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 아브라함 가족의 직업도 우상을 만들던 자들이었죠.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신께 바치는 장면은 아브라함에게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교회(종교)는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할 정도로 거짓말이 난무하는 장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말씀의 본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설교자들과 그 설교를 듣는 자들은 말씀을 모두 ‘신앙 행위’로 받아 지극정성으로 종교 활동만 할 뿐이죠.
하지만 9절 중반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 중에서 몇 몇을 네게(선택받은 자들) 준다고 합니다. 즉, 선택받은 자들도 반드시 종교(기독교)라는 모임에 들어가 거짓말하는 자들과 함께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서는 옛 자아와 늘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고로 여기서 사탄의 회당에서 거짓말하는 크리스찬의 진정한 정체는 바로 ‘나’입니다. 정확하게는 나의 옛 자아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종교인들로 하여금 선택받은 자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예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사랑하는 줄 알게 하겠다고 하시죠. 지금 이 구절을 물리적인 장면으로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이 말씀은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도 종교인들의 삶, 늘 거짓말하는 삶을 살게 되지만 결국 그 옛 자아가 거듭난 나에게 굴복하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은 온 우주가 순종하는 방향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역사를 살피다 보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종교인들이 복음을 알게 된 선택받은 자들 앞에 굴복하는 사건도 존재하고, 이후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재림 예수님의 사건이 벌어질 때 물리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하지만 과거가 되었던, 미래가 되었던 이런 종류의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이것은 참 본질을 설명하는 큰 표지판일 뿐입니다. 이 말씀의 참 본질은 선택받은 자들의 종교적 삶인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싸움을 의미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