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1절 보좌에 앉으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는 말씀(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안팎으로 써져 있다는 것은 온 우주와 역사는 말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말씀을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고 나옵니다. 계시록에서 나오는 ‘일곱’은 갯수 개념이 아니라 복음적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곱 인은 복음이 완전하게 은닉되어진 상태라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의 속성중 '은닉'을 의미합니다.
성경 말씀은 스님, 선생님, 교수 등등 기초 학식 이상만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해석이 가능하고 심지어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 들어 있는 교훈은 전혀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해석하는 그 해석이 바른 해석이 아니거나 본질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복음의 참 본질은 은닉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 난 후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를 그룹(천사)을 통해 숨겨 버리셨죠. 은닉입니다. 그 생명나무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지만 그 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8: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복음은 성령께서 가르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2절에서 ‘누가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로 질문을 하죠. 아무도 말씀 안에 있는 숨겨진 복음을 드러낼 수 있는 자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3절에서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라고 부연 설명합니다. 인을 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도 이 상황을 알게 되면서 4절에서,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없으므로 크게 울었더니’라고 되어 있죠. 인간이 복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이시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귀 먹은 자의 귀를 들리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으로 복음을 알아듣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행전 2장에서 ‘방언 에피소드’로 설명하셨죠. 같은 지역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의 특징으로 복음의 속성을 설명하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천국에 속한 자만이 천국 말을 알아 듣는다’ 즉, 복음은 오직 선택받은 자만이 알아듣게 된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한국 교회는 그 방언을 연습하여 랄랄라~ 초급방언, 케라 케라 ~~ 중급방언, 니페라 멀라라~~ 고급방언 등등을 서로 서로 배우고 스스로 연습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죠.
이렇게 요한이 그 누구도 복음을 알 수 없고 그 누구도 열어볼 수 없다고 울고 있을 때,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그 인을 떼신다’라고 선언합니다. 오직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 주셔야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말씀하셨죠. 즉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복음이 들리고 알아듣게 되는 증상’이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끝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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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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