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계5:6-7(24.08.19.월)

은혜바라기 2024. 8. 19. 08:32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6절에 나온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린 양도 예수님의 정체성 중 재물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6절 중간에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다고 나옵니다. 친절하게도, 이 눈들은 하나님이 온 땅에 보낸 일곱 영이라고 부연 설명이 되어 있죠. 계속 말씀드리지만, 요한 계시록의 일곱은 개수 개념이 아니라 ‘복음적 완전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로 일곱 영이란 복음적으로 완전한 영이란 뜻입니다. 당연히 성령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도 예수님께서 성령님과 늘 함께 계시다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곱 뿔도 ‘완전한 뿔’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뿔은 뭘까요? 뿔은 강력한 권한, 권력, 힘을 상징하는데, 모든 복음은 오직 구원이 목표이기 때문에 뿔이란 구원을 줄 수 있는 권한으로 보시면 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대인 사역인 십자가 오른쪽 강도의 마지막 고백이 기억나시나요? 그 강도는 자신의 구원이 오직 예수님의 선택(기억)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했죠. 오직 구원의 능력(뿔)이 예수님께만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제단은 4각형입니다. 고로 이 제단은 이 세상을 의미하죠. 그런데 그 제단 안에 희생 제물(어린 양)이 들어가 희생되죠. 이 어린 양이 세상(4)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4각형의 제단 네 모퉁이에 각각 뿔이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아래로 부터 위로 세워져 있는 이 뿔은 구원의 십자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구약 시대 도피성 율법을 아시나요? 사람이 실수(고의가 아닌 과실)로 살인을 한 경우 도피성에 들어가 이 구원의 뿔을 잡으면 그 사람은 살인에 대한 형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 도피성에서 보호를 받게 되고 대제사장이 죽으면 고향으로 살아서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대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 도피성 과정 하나 하나가 전부 복음의 과정을 설명하죠.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품에 들어가 그 분의 구원의 능력(뿔)을 잡게 되면 예수님의 보호를 받게 되죠. 이후 우리는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게 되면서 우리의 참 고향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완벽하게 도피성 규례와 똑 같죠? 구약의 모든 율법, 규례, 제사, 사건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도피성 에피소드를 약간 더 깊게 묵상해 볼까요?  ‘고의가 아닌 과실로 인한 살인(죄)’이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글자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수 많은 죄들은 거의 다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까?

 인간이 죄인이 된 것, 즉 인간이 선악과를 먹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큰 의도’ 속에서 벌어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매우 매우 깊고 또 깊게 묵상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하나님의 잘못? 나의 잘못? 이라는 관점으로 다가가시면 어떠한 해답을 내어 놓아도 다 오답입니다. 

 실제로 모든 원죄의 원인과 책임은 인간에게 100%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과연 그것을 모르셨을까?  아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는 일면 ‘과실죄’의 성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피성 에피소드에서 ‘과실죄’에 강점을 찍어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짜 창조의도는 창세기에 있지 않고 지금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의 참 계획은 예수님과 영생을 함께하는 선택받은 자들(교회)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택받은 자들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참 창조를 설명하는 상징적 무대인 것이죠.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 '상징'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깊게 들여다 볼 수록 이 세상이 '프로그램된 상징물'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죠. 

 그래서 이런 모든 복음 과정을 들여다 보면, 인간은 스스로 절대 부패한 죄인이 맞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과실죄’의 성격도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5:11-14(24.08.21.수)  (1) 2024.08.21
계5:8-10(24.08.20.화)  (1) 2024.08.20
계5:1-5(24.08.16.금)  (1) 2024.08.16
계4:8-11(24.08.14.수)  (0) 2024.08.14
계4:6-7(24.08.13.화)  (1) 2024.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