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계6:2-8(24.08.23.금)

은혜바라기 2024. 8. 23. 08:23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계속 말씀드리지만, 각각의 인들은 역사 혹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설명하는 모든 고난의 속성을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시간의 순서로 나열한 것 뿐입니다. 

 또한 첫째 인부터 넷째 인까지는 동서남북, 즉 이 땅을 관점에서 바라본 고난의 속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째 인은 ‘말씀과 행위’의 관점에서 바라본 고난의 속성을 강조한  것이고 여섯째 인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바라본 고난의 속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째 인은 고난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묵상할 첫째 인부터 넷째 인 까지는 이 땅에서 바라보는 관점의 고난입니다. 

 첫째 인은 흰 말이죠. 흰 말은 하나님인 척 하는 '종교'를 의미합니다. 
 둘째 인은 붉은 말입니다. 붉은 말은 전쟁, 싸움, 다툼을 의미합니다. 
 셋째 인은 검은 말입니다. 검은 말은 율법입니다. 
 넷째 인은 청황색 말입니다. 청황색 말은 사망, 죽음입니다. 

 다시 한번 방향성을 잘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유기된 자들을 두렵게 하여 반성시켜 구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를 인본주의(죄)에서 분리하기 위해 고난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애굽(인본주의 상징)에서 이스라엘(선택받은 자들)을 분리하기 위해 10가지 재앙(고난)이 필요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주의 또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고난을 잘 극복, 수련, 고행하여 훌륭한 종교인이 되자~~~ 의 방향성이 아닙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 '내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인되고 예수님의 필요성을 알게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을 통해 결국 ‘예수님의 피’ 뒤에 숨는 것 만이 살 길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인들의 고난은 재미있게도 반드시 예수님을 묵상하게 만들 수 밖에 없는 고난들입니다.

 흰말인 종교(기독교)를 통해 우리는 성경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종교적 짐을 어깨에 계속 올리면서 종교적 고난을 맞이하게 되죠. 이런 종교적 열심을 표현한 것이 ‘활을 쏘고 면류관을 받고 이기고 또 이기려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를 쌓아 올리는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절대 활을 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기려 하는 모습이 아니라 이미 이긴 분이죠. 예수님과 약간씩 끝이 다릅니다. 다를 이 끝 단, 즉 이단의 모습으로 표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복음’을 듣지 못하는 모든 기독교인은 전부 ‘이단’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이 흰말 종교(기독교)를 도구로 사용하여 복음을 듣게 됩니다. 

 붉은 말인 전쟁, 투쟁, 싸움, 경쟁을 통해 우리는 늘 고난을 겪죠. 실제 전쟁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가정, 학교, 직장에서 수 없이 경쟁하면서 고난받습니다. 유기된 자들은 이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기고 늘 바벨탑 꼭대기에 오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이런 고난을 통해 이 세상이 가치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오직 유일한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자가 됩니다. 

 태풍이 몰아치는 저녁 바닷가에 배 한 척이 위태위태하게 홀로 떠 있습니다. 태풍과 싸우며 이리 저리 흔들리죠. 그런데 그런 배를 단단한 바위에 밧줄로 묶는 순간 그 배는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이 배를 바위에 묶였으니 자유를 잃어버렸다~~라고 하나요? 아니죠. 반대로 바위에 묶였기 때문에 비로소 태풍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합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붉은 말 고난 속에서 예수님께 묶여 구원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검은 말인 율법은 항상 우리에게 내적 갈등을 가져오죠. 이 율법은 반드시 행위로 결과가 드러나야 하는데 그 누구도 이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거나 그 율법의 기준을 낮추거나 자신의 행위를 과장하거나 남을 비판하여 낮추므로 자기를 높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소망하는 방향성을 가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청화색 말인 사망과 죽음은 모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고난입니다. 실제로 작은 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질병’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이 죽음 때문에 죽음 너머의 세상을 묵상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P.S
** 홈페이지 처음에 보면, 지난 묵상과 특별 묵상이 포스팅 되어 있습니다.
** 핸드폰에서는 첫 화면 중간에 보시면 “분류 전체 보기”를 보시면 됩니다. 
**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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