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첫째~~일곱째 인은 시간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설명하는 고난의 속성을 나열한 것 뿐입니다. 그 중 다섯째 인은 ‘율법과 행위’에 대한 관점으로 본 고난의 속성입니다.
성경에서 숫자 5는 모세오경을 의미하는 숫자로 ‘율법’을 의미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말씀으로 이해하셔도 됩니다. 5라는 숫자는 성부성자성령(3) 하나님을 증거(2)한다는 뜻입니다.(3+2=5)
그래서 다섯째 인을 떼실 때, 하나님의 말씀(5)과 그들이 가진 증거(행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이 제단 아래 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단이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조금 어렵습니다. 잘 따라오세요.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살아 갑니다. 이렇게 자신의 기준, 인간의 기준으로 사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죄의 진정한 정체가 ‘인본주의’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에서 가장 최고의 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복음적으로 가장 악한 것이 됩니다.
이렇게 인간이 스스로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율법(말씀)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그 율법을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으로 모두 행할 수 있다면 그 누구든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구약’이라고 합니다. 옛 언약이죠.
하지만 그 누구도 율법이라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죠. 다만 율법을 자신들의 기준대로 지킨 후 ‘거의 다 지켰다~~’고 한 자들이 바리새인, 즉 훌륭한 종교인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율법의 본질적 기준을 정확히 설명합니다. 형제를 미워만 해도 살인,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 그리고 그렇게 범죄 했을 경우 해결할 수 있는 방법까지 말씀하시죠. 눈이 범죄하면 눈을 뽐고, 손이 범죄하면 손을 잘라내라고 합니다. 이런 기준으로는 그 어느 누구도 온전히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옛 자아로 이 땅에 살면서 이 율법과 행위 속에서 평생 갈등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죠. 그 분은 이 모든 복음을 그 분의 신부들(교회)에게 알려 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를 그 분의 십자가 제단 아래 같이 못 박으셨습니다. 이것을 9절에서 설명하고 있죠.
이렇게 율법과 행위, 거듭난 자아와 옛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선택받은 자들의 심정을 10절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나오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 바로 나의 옛 자아입니다. 즉, 10절은 나의 옛 자아와의 갈등과 싸움은 언제 끝나나요? 라는 기도문입니다.
그래서 11절에 나온 예수님의 대답은 ‘잠시 쉬면서 기다리라~~’고 하죠. 그 이유가 다른 선택받은 자들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분량 만큼 그들 자신의 옛 자아와의 싸움을 다 마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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