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계7:13-17(24.08.30.금)

은혜바라기 2024. 8. 30. 08:26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13장에서서 나온 ‘장로’는 앞에서 언급한 24장로 중 하나입니다. 24장로는 2*12=24로 숫자 2가 증명의 숫자, 12가 교회의 숫자 이므로 증명된 교회, 즉 묵시 속에서 이미 완성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한이 14절에서 이 장로 중 하나에게 ‘내 주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 장로는 교회 중 한 사람, 즉 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가 한몸원리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나(교회)를 한 몸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의식하는 ‘나’는 무조건 옛 자아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나를 자의적으로 의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천국에 가야만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성경은 선택받은 자들을 이 땅에서 거듭나게 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었다~~ 고 선언하죠. 

 이 땅에서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거듭난 나 혹은 새로운 피조물이 바로 '예수 드리스도'입니다. 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지체)’입니다. 이것을 오늘 13장에서 ‘흰 옷 입은 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때 흰 옷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14절에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라고 합니다. 구약의 제사 방식을 보면, 제사장이 희생된 제물의 피를 우슬초에 묻혀서 자신의 옷을 계속 때립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끔찍하게도 피를 뒤집어 쓴 모양이 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죄인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 감추어진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성소 안의 법궤 안에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동시에 설명하는 3가지 물건이 들어 있죠. 맛나,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두 돌판입니다. 그 위에 법궤 뚜껑을 닫고 그 위에 희생된 제물의 피를 뿌립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피로 인간의 죄를 덮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술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고 뻗어서 자고 있을 때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모습을 두 형제에게 드러내어 밝혔습니다. 반대로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덮고 그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아들 함에게 저주를 내리고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내립니다. 함의 자손들이 바로 ‘가나안 이방인’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가지고 인본주의 기준으로 선과 악으로 정의하면  모순에 빠져버립니다. 이 에피소드의 초점은 ‘죄를 드러냄이 저주’ ‘죄를 덮는 것이 축복’이라는 복음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덮습니다. 율법이 반드시 존재해야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까지 도달하게 되기 때문에 율법은 반드시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율법을 지킬 수록 선택받은 자들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유기된 자들은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있다~~ 는 착각에 빠지죠. 

 또한 오늘 말씀 15절 하반절을 보면, 교회 위에 장막을 친다는 말씀도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감싸고 있는 장막(성막,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종종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는 성전이 교회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교회는 한몸원리로 꽁꽁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몸원리를 망각하고 예수님과 나를 분리하여 예수님을 결승전 골인 지점에 '우상'으로 가져다 놓고 그 분을 향해서 달리는 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반대로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등에 업혀서 경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골인 지점이 아니고, 골인 지점에 서 계신 예수님도 아니고 지금 당장 우리가 업혀있는 그 분의 등입니다. 

P.S
** 홈페이지 처음에 보면, 지난 묵상과 특별 묵상이 포스팅 되어 있습니다.
** 핸드폰에서는 첫 화면 중간에 보시면 “분류 전체 보기”를 보시면 됩니다. 
**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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