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 반복서론 : 첫째~일곱 인은 시간(역사)의 순서가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고난의 속성을 나열한 것 뿐입니다. 인, 나팔, 대접도 시간(역사)의 순서가 아닙니다.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고난의 속성을 표현한 것 뿐입니다. 고난을 코끼리로 표현한다면, 코, 귀, 다리로 분리하여 나열한 것과 같죠. 하지만 우리에게 코끼리(고난)가 다가 올 때는 통째로 다가옵니다. 이중 1-4까지는 동서남북(4)을 가리키는 이 땅의 관점에서 본 고난, 5는 율법과 행위의 갈등 관점에서 본 고난, 6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본 고난, 7은 마지막 심판,분리,완성의 관점에서 본 고난을 의미합니다.]
‘인’의 속성은 ‘은닉’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은닉성이죠. 복음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 볼 수 있도록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담고 있는 포장지 용도의 겉 말씀도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훈과 종교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성경 말씀으로 종교와 교훈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이 종교와 교훈도 하나님의 섭리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의도는 말씀 안에 숨겨져 있는 복음입니다.
“마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13:47-48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여기서 그물에 해당하는 것이 ‘종교(기독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종교(기독교)라는 그물에서 좋은 것과 못된 것을 분리하여 심판하는 것을 천국의 완성으로 설명하셨죠.
일곱은 복음적 완전수입니다. 고로 일곱째 인을 뗀다는 것은 완전하게 은닉된 복음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을 계속 시간적, 순서적 의미로 읽게 되면 마지막 인이 펼쳐지므로 이제 곧 천국이다~~ 라는 드라마에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일곱째 인을 떼고도 다시 일곱 나팔이 등장합니다. 즉, 아직도 우리가 받을 고난의 속성에 대하여 더 설명하실 것이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반 시간쯤 고요하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쉽게 말하면, 고난이 잠시 멈춘다는 것인데 한 시간도 아니고 반 시간이라는 뉘앙스가 보이시나요? 매우 짧다는 뉘앙스입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식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복된 소식이 되려면 내가 저주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필수 조건입니다. 내가 저주 아래 놓여 있어서 비참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의 힘으로는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야 하죠. 하지만 그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구원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소식이 나에게 복된 소식이 되는 것이죠. 고로 내가 저주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알기 위해 이 세상은 나에게 끊임없는 고난을 제공합니다.
이 고난은 유기된 자들이나 선택받은 자들이나 똑같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그 고난 속에 은닉된 복음의 축복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때 힘든 고난에서 잠시 풀려나와 복음의 은혜를 잠시 맛보죠. 이때 영적 행복감(평강)을 누립니다. 그런데 이 순간이 반시간, 즉 매우 매우 짧습니다. 선택받은 자라도 다시 옛 자아의 고난으로 돌아갑니다.
고로 1절은, 예수님께서 선택받은 백성에서 은닉된 복음을 드러내어 가르쳐 주시면 그때 매우 잠깐(반 시간)동안 고난이 잊혀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불교의 ‘해탈의 경지’와 같은 지경에 오르려고 종교적인 노력을 합니다.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항상 성령충만하여 늘 은혜 충만한 행복한 신앙인이 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목사들은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순간이 없지는 않지만 그 순간은 ‘반 시간’처럼 매우 짧습니다. 대부분은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처지인가?를 알 수 있도록 끊임없는 고난이 닥쳐오죠. 그래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늙어 갈수록 점점 더 비참해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약해지고, 병들고, 늙고, 추해지죠. 그런데 이 기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은 점점 늙어 갈수록 점점 더 비참해 질수록 ‘복된 소식’만 의지하게 되죠. 즉 예수님만 더 더욱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잠언20:29 하반절을 보면,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필요성을 하나 하나 되새기면서 늙다 보면 생기는 '백발'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름답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