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 반복서론 : 인, 나팔, 대접이 첫째부터 일곱까지 나열된 것은 시간(역사)의 순서를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고난을 그 속성 별로 나열한 것 입니다. 고난을 코끼리로 표현한다면, 코, 귀, 다리로 분리하여 나열한 것과 같죠. 하지만 우리에게 코끼리(고난)가 다가 올 때는 통째로 다가옵니다. 이 중 1-4까지는 동서남북(4)을 가리키는 이 땅의 관점에서 본 고난, 5는 율법과 행위의 갈등 관점에서 본 고난, 6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본 고난, 7은 마지막 심판, 분리, 완성의 관점에서 본 고난을 의미합니다.]
오늘도 2절을 보면, 일곱 천사, 일곱 나팔이 나오죠. 일곱은 개수가 아니라 복음적 완전수를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즉, 완전한 천사, 완전한 나팔이라는 속성을 설명하려고 7이라는 숫자를 가져다 쓰신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천사는 완전한 천사의 표현이므로 ‘성령’으로 해석하셔도 됩니다. 또한 나팔은 ‘알림’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복음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큰 소리가 되어 알려진다는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나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3절의 제단은 ‘십자가’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단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상징입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제사를 허락하신 이유는 그 제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데 인간은 죄를 하루에도 수천 수만번 짓죠. 그 때 마다 제사를 지낼 수도 없고 혹은 정해진 기간에 제사를 지내서 과거의 죄를 지운다고 해도 그 시점부터 다시 발생하는 미래의 죄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즉,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설명하는 매우 정밀한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구약 제사의 핵심은 인간이 드리는 제사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다리고 기대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천사가 제단 곁에서 금 향로에 많은 향을 받았는데 이것을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금 제단에 드린다고 하죠. 여기서 천사는 성령으로 해석하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즉, 성령께서 성도의 기도에 향을 합하여 제단(예수님의 십자)에 드리는 장면입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로마서에 자세히 나옵니다.
“롬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3절에 나온 ‘기도’는 그 앞에 있는 중요한 단어를 빼면 안 됩니다. 즉, ‘성도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성도란 선택받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선택받은 자들의 기도와 유기된 자들의 기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 다름을 나누는 것이 바로 ‘성령의 간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성령의 간구를 '향'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병 낫게 해주세요. 자식 잘 되게 해주세요. 우리 공동체(우리 가족, 우리교회, 우리나라) 잘 되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를 누구나 합니다. 이것은 유기된 자들이나 선택받은 자들이나 그 누구라도 저절로 나오는 기도입니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서 ' 내 자식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기도지만 그냥 집에서 청소하다가 '내 자식 잘되게 해주세요'라고 불연듯 생각을 품는 것도 똑같은 기도입니다. 사실 기도의 본질은 고난받는 자들이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뿐이죠. 대부분의 기도는 현재에 닥친 고난 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고난에 대한 두려움의 발버둥입니다. 이것은 유기된 자들이나 선택받은 자들이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의 기도는 여기에 성령의 간섭(향)이 들어갑니다. 이 성령의 간섭(향)은 양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위로는 하나님께 전달이 되고 아래로는 다시 성도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성도의 기도는 기대와 전혀 다른 응답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도는 기도 자체의 방향성도 바뀝니다. 아들이 없어 낙심한 한나가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다가 그 아들을 오히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4절은 성령의 간구(향)가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하나님께 올라가는 장면을 설명하는 것이고 반대로 5절은 그렇게 합하여진 기도와 향을 담은 향로에 십자가의 심판을 담아서 다시 선택받은 자들이 있는 땅으로 쏟아 내는 것입니다. 이때 성도들의 기도가 심판을 담아 고난의 형태로 내려오는데 이 속성이 우레, 음성, 번개, 지진의 속성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레는 매우 강하다는 속성, 음성은 말씀을 담고 있다는 속성, 번개는 어두움을
쪼개고 매우 긴급하게 전달된다는 속성, 지진은 이 땅의 근간(인본주의)를 흔든다는 속성을 의미합니다. 모두 복음의 속성들이죠. 즉, 모두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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