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 반복서론 : 인, 나팔, 대접이 첫째부터 일곱까지 나열된 것은 시간(역사)의 순서를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고난을 그 속성 별로 나열한 것 입니다. 고난을 코끼리로 표현한다면, 코, 귀, 다리로 분리하여 나열한 것과 같죠. 하지만 우리에게 코끼리(고난)가 다가 올 때는 통째로 다가옵니다. 이 중 1-4까지는 동서남북(4)을 가리키는 이 땅의 관점에서 본 고난, 5는 율법과 행위의 갈등 관점에서 본 고난, 6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본 고난, 7은 마지막 심판, 분리, 완성의 관점에서 본 고난을 의미합니다.]
일곱은 복음적 완전수입니다. 그래서 일곱 나팔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복음이 완전하게 전달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일곱 천사는 완전한 천사이므로 성령으로 해석하셔도 됩니다.
1-4 나팔은 이 땅(동서남북)의 관점에서 본 고난의 속성입니다. 이때 땅이란 흙 혹은 지구와 같은 좁은 개념이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물과 온 인류 역사와 같은 큰 개념으로 해석하셔야 합니다.
1-4 나팔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삼분의 일’이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고난이 제한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폭행이 목적이 아니라 회초리가 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멸망시킬 것이 목적이라면 피조물들은 한번에 다 멸망하겠죠. 하지만 이 고난들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므로 늘 제한된 고난로 나타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나오는 '천사가 나팔을 부니~ '라는 패턴은 성령께서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받은 자들에게 분명하게 들리도록 설명을 하시니~~ 라고 해석하시면 됩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쏟아진다고 할 때 우박에 빨간 피가 섞여서 내려오는 것을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고난이 피, 우박, 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데 그 속성이 우박 처럼 피할 수 없다는 것과 불 처럼 심판과 연단의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땅과 수목과 풀을 삼분의 일 씩 태우죠. 이 땅은 '모든 자연 뿐 아니라 인류 역사와 개개인의 모든 인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땅에서 부터 나와서 자란 수목과 풀은 인류 역사와 개개인의 모든 인생에서 파생된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고로 종합하면, 피할 수 없는 심판과 연단의 속성을 가진 예수님의 십자가가 온 우주, 온 인류 역사 그리고 개개인의 모든 인생에 섭리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천사의 나팔에서는 불 붙는 큰 산이 바다, 바다 생물, 배의 삼분의 일을 태우죠. 산은 성전을 가리킵니다. 성전은 교회이기도 하고 예수님이기도 하죠. 복음은 늘 한몸원리에 입각해서 묵상해야 합니다. 고로 불 붙은 산은 고난받는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고 고난받은 예수님, 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 붙은 큰 산인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다에 던져 집니다. 바다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섭리속에 진행되는 인류의 모든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 바다 속 피조물들도 제한된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죠. 또한 배는 그 역사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역사를 이용하여 정치를 하고 돈을 벌고 문화적 인기를 누리는 모든 자들이 제한된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천사의 나팔에서는 ‘햇불 같이 타는 큰 별’이 나옵니다. 모든 별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큰 별이죠. 그래서 큰 별은 교회의 대표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별은 햇불 같이 타고 있는 고난처럼 나오죠. 그래서 이것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강들의 삼분지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바다, 강, 물샘 모두 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큰 의미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바다는 인류의 모든 역사를 의미하고 강은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의미하고 물샘은 개인의 인생 역사를 의미합니다.
“창2:10 강이 에덴에서부터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네 근원의 ‘4’도 동서남북, 즉 온 우주와 온 땅 그리고 온 인류 역사를 의미합니다. 고로 이 장면은 온 세상과 모든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 흐르듯 흐른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에덴으로부터 흘러나온 4개의 강 : 비손강, 기혼강, 힛데겔강, 유브라데강)
종합하면,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거대한 하나님의 은혜(물)의 섭리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인데, 바다가 가리키는 온 인류 역사, 강이 가리키는 나라와 민족의 역사, 물샘이 가리키는 개인의 인생 역사에 모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역사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들어가서 심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멸망이 목적이 아니라 분리하여 구원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에게 1/3의 고난, 즉 제한된 고난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끝
'요한계시록(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8:12-13(24.09.06.금) (3) | 2024.09.06 |
---|---|
계6:10-11(24.09.05.목) (2) | 2024.09.05 |
계8:2-5(24.09.03.화) (1) | 2024.09.03 |
계8:1(24.09.02.월) (3) | 2024.09.02 |
계7:13-17(24.08.30.금) (1) | 2024.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