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계8:12-13(24.09.06.금)

은혜바라기 2024. 9. 6. 09:14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 반복서론 : 인, 나팔, 대접이 첫째부터 일곱까지 나열된 것은 시간(역사)의 순서를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고난을 그 속성 별로 나열한 것 입니다. 고난을 코끼리로 표현한다면, 코, 귀, 다리로 분리하여 나열한 것과 같죠. 하지만 우리에게 코끼리(고난)가 다가 올 때는 통째로 다가옵니다. 이 중 1-4까지는 동서남북(4)을 가리키는 이 땅의 관점에서 본 고난, 5는 율법과 행위의 갈등 관점에서 본 고난, 6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본 고난, 7은 마지막 심판, 분리, 완성의 관점에서 본 고난을 의미합니다.] 

 첫째~네째 나팔은 이 땅(동서남북:4)의 관점에서 본 고난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난을 받는 주체는 유기된 자들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의 모든 고난은 선택받은 자들이 받는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성경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해, 달 ,별은 복음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가장 강력한 상징물입니다.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생명력, 밝음, 멸균 등등의 속성을 가지면서 지구(흙:사람)를 비추는 구원을 상징하죠. 

 그리고 달은 오직 해의 빛을 받을 때에만 빛을 반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들입니다. 절대 스스로 빛을 낼 수가 없다는 역설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종교인들은 스스로 훌륭한 사람, 즉 스스로 빛을 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빛을 받아 빛을 낼 수 있는 존재인 교회가 모두 완성되면 천국에는 가득히 빛나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겠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밤하늘에 가득히 존재하는 별들입니다. 

 그런데 12장을 보면, 해, 달, 별의 삼분의 일이 고난을 받습니다. 예수님도 인자로 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해도 고난을 받는 장면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자기 십자가라는 고난을 받게 되죠. 그러나 삼분의 일이라는 제한된 고난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한 고난이라고 해석을 하시면 됩니다. 

 이때 13절을 보면,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나옵니다. 공중(하늘)은 ‘땅’과 분리된 순간부터 시작 되죠. 이 땅과 분리되는 것이 ‘천국’이고 이 땅에 묶여 있는 것을 땅 지 묶일 옥 ‘지옥’이라고 합니다. 고로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라는 것은 묵시 속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성령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왜 이 둘을 같이 볼 수 있는지 아시겠죠? 복음은 한몸원리를 벗어나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천국의 시선으로 보는~~’이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천국의 시선으로 보면~~’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라고 합니다. 고난의 중첩을 의미합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이 고난을 받는 주체는 ‘선택받은 자들의 옛 자아’입니다. 물론 유기된 자들은 여기에 휩쓸려 모두 완전한 멸망을 하겠죠. 

 여기서 잠깐 유기된 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짧은 묵상을 해보죠. 유기된 자들의 정체가 뭘까요? 유기된 자들은 왜 이 땅에 태어났을까요? 바로 선택받은 자들의 ‘거울’ 역할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이 땅에 살면서 옛 자아로 살아갑니다. 그들이라도 옛 자아와 거듭난 자아로 완벽하게 분리하여 분열된 자아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연습하고 훈련하시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종교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라도 이 땅을 사는 동안의 모든 의식은 전부 옛 자아에 속한 것입니다. 단, 성령께서 견인하셔서 복음을 묵상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시야)으로 나를 보면서 죄인임을 깨닫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소망하는 찰나의 순간이 종종 있는데, 이때 잠시 위로를 얻을 뿐이죠. 이 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선택받은 자들에게 이런 증상은 반드시 나오게 됩니다. 고로 우리의 구원은 나의 신앙생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로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는 의미는 구원이 '우리의 믿음이라는 감정 유무'에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우리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께  달렸다는 것을 우리의 기준으로 풀어 설명한 것 뿐입니다. 즉,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 달렸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나마 나타나는 증상이 '믿음'뿐이기 때문입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을 살아갈 때 옛 자아로 살기 때문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늘 자기기준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필요하죠. 그 역할이 유기된 자들입니다. 타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부모를 죽인 자식들이나 자식을 버린 부모들을 TV에서 보면서, 어쩜~~ 저런 짓을 하는가!! 라고 비판하지만 사실 그 모습이 바로 ‘나’입니다. 나도 같은 환경에 처하면 똑같은 행위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유기된 자들은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죠. 그 이유는 그 사람을 비판함으로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님만 소망하게 됩니다. 즉, 그런 장면 조차 복음을 묵상하는 계기가 됩니다. 

 왜 성경이 선택받은 자들에게 ‘너희는 왕 같은 존재다~~’라고 했을까요? 이 세상 전부, 심지어 유기된 자들 조차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도구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 온 세상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 같은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받은 자들이 선택받는 유일한 조건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아니면 그냥 흙(티끌:아무것도 아님)이죠. 내가 '선택받은 자' 되는 것은  내가 예수님의 지체일 때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왕 같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설명드렸지만 참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P.S
** 홈페이지 처음에 보면, 지난 묵상과 특별 묵상이 포스팅 되어 있습니다.
** 핸드폰에서는 첫 화면 중간에 보시면 “분류 전체 보기”를 보시면 됩니다. 
**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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