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계12:9절에서 용의 정체는 ‘사탄’이라고 정확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사탄은 어떤 형상을 지칭하는 명사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죠? 사탄도 그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12:9절에 보면, ‘속이는 자’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이것을 피부에 조금 더 와 닿게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사탄은 ‘인본주의’를 통해 우리를 속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2절 하반절을 보면,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준다고 나오죠. 그래서 이 짐승의 정체는 ‘구체화된 인본주의’입니다. 그래서 13장은 조금 더 인본주의 본질에 관하여 다루게 됩니다.
1절, 짐승이 ‘바다’에서 나옵니다. 바다는 땅에서 흘러간 모든 물이 모여 있는 곳인데 땅은 인본주의를 가리키고 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기 때문에 바다란 인간의 모든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함께 공존하는 상징물입니다. 그래서 바다는 때로는 저주를, 때로는 은혜를 표현합니다. 그래서 크게 보면, 사탄과 인본주의도 하나님이 복음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절을 종합 해석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도도히 흐르는 인류 역사 속에서 ‘인본주의’라는 짐승이 나오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이렇게 구체화된 인본주의를 살펴보면, 뿔이 10개, 머리가 7개, 왕관이 10개 있고 각각의 머리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있다고 나옵니다. 이것을 갯수로 생각하시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모양이 됩니다. 단지 10과 7이라는 숫자의 속성이 필요해서 이렇게 사용한 것입니다. 10은 완전수, 7은 복음적 완전수죠. 또한 뿔은 능력, 왕관은 권력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쉽게 풀면, 이 세상에서 인본주의는 거짓 복음 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완벽한 능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본주의 가치는 돈, 권력, 인기, 명예, 종교 등등이 존재하며 이것은 인류가 지향하는 최고 가치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것을 얻기 위해 평생 노력하고 경쟁합니다. 이것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됩니다. 이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사람들이 숭상하는 인본주의를 1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보다 ‘돈(의식주)’ 하나님 보다 ‘권력, 인기, 명예’ 하나님 보다 ‘종교’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세 가지 큰 묶음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3가지 시험이었죠.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모두 ‘말씀’으로만 이기셨죠.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도 ‘복음’으로만 이 시험을 이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복음이란 내가 이길 수 없으니 예수님께서 나 대신 이기셨다는 것을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겼다고 여김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짐승은 표범, 곰, 사자와 같다고 나옵니다. 인본주의는 빠르고, 강하고, 무섭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용(사탄)이 이 짐승(인본주의)에게 능력, 보좌, 권세를 주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3절 보면, 그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죽게 된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그 짐승을 따른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설명드릴께요. 어떤 사람이 평생 인본주의 가치 중 ‘돈’을 따르고 숭배하다가 그 가치를 잃어 버려서 절망했다고 해보죠. 하지만 다시 가수가 되어서 ‘인기와 명예’를 얻게 된다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을 향해 ‘한 번 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인기와 명예를 얻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박수칩니다. 이때 이 사람은 처음 잃어 버렸던 돈 보다 더 높은 인본주의 가치인 ‘인기와 명예’에 붙들려 평생 그 인본주의 가치(짐승)을 따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온 우주와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의 방향성대로 역사가 흐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표범, 곰, 사자와 같은 능력, 보좌, 권세를 강진 무섭고 강한 제국들이 역사 속에서 나타났죠. 그리고 그 제국은 망했다가 다시 생겨나기를 반복합니다. 앗수르, 바벨론, 헬라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는 제국의 흥망성쇠는 고스란히 역사 속에 등장하죠. 하지만 성경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예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역사적 사실 조차 성경의 말씀을 다시 반복하고 강조하여 복음을 설명하는 보조 도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본주의(짐승) 함정에 빠지면 그 어떤 자도 스스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4절에서 ‘누가 이 짐승과 싸워서 이길 수가 있는가?~~’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 함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것으로만 빠져 나올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그 분의 품에 나를 넣으시고 그 함정을 빠져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끝
'요한계시록(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계시록13:11-13(24.10.28.월) (1) | 2024.10.28 |
---|---|
요한계시록13:5-10(24.10.25.금) (1) | 2024.10.25 |
요한계시록12:13-17(24.10.23.수) (2) | 2024.10.23 |
요한계시록12:11-12(24.10.22.화) (2) | 2024.10.22 |
요한계시록12:10(24.10.21.월) (1) | 2024.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