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12:11-12(24.10.22.화)

은혜바라기 2024. 10. 22. 08:04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직전 묵상을 요약하면,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것을 고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였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피의자가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고로 우리를 향한 사탄의 고소는 성립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종교인들은 아직도 자신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들을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율법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낮추어 해석하거나 상대적으로 자신 보다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비판하여 그들을 낮춤으로써 자신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율법을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정도의 기준으로 낮춰서 지켜냅니다. 

 이들은 ‘욕심을 내지 말라~~’는 율법을 ‘그래도 나는 명품빽은 사지 않고 시장에서 5만원짜리 가방을 사고 한달에 3만원씩 아프리카에 선교헌금 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상대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과 비교하면서 위안을 삼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단 한 가지의 율법이라도 단 한번만 어겨도 모든 율법을 다 어긴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11절 초반에 보면, 선택받은 자들(우리 형제들)이 예수님의 피로 그를 이겼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를 이겼다고 나오는데, 여기서 ‘자기들의 증언’이란 내가 나의 옛 자아를 보니 나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여 나는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되는 구나~~ 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만이 오직 ‘그(사탄)’를 이길 수 있다고 나오죠. 

 선택받은 자들에게서 나오는 이런 증상은 11절 후반,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나옵니다. 이 구절도 한 두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묵상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겠다~~’라는 각오는 대부분 복음적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이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그러나 이 생각은 이슬람을 믿는 자들이 더 많이 합니다. 이슬람 교도들이 가진 순교의 가치관과 교회에서 ‘내가 예수님께 생명을 바치겠다~’라는 가치관은 가치적으로 똑같습니다. 그냥 자신의 의를 쌓는 것의 일환일 뿐입니다. 오직 유일한 가치는 예수님의 십자가 순교(순종) 하나 뿐입니다. 

 여기 나온 11절 후반부의 ‘생명’은 그 가치 상실이 초점입니다. 비교를 해보면, 종교인들이 ‘나의 생명을 바치겠다~~’라는 것은 자신의 생명의 가치가 가장 귀중하므로 그 귀중한 것을 예수님께 바쳐서 나의 가치를 뽐 내겠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자들이 복음을 알게 되면 자신의 생명 가치가 점점 사라집니다. 이것은 ‘이 힘든 세상 살기 싫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예수님의 소망’을 알게 되면서 그 밖에 모든 것에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의 모든 가치가 점점 상실되어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된다는 의미죠. 그런데 이 가치 중에 가장 큰 가치가 ‘생명’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은 생명 마저도 가치가 상실되면서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서 비유를 보면, 밭에서 일을 하다 보물을 발견하게 된 농부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다는 비유가 나오죠. 이 비유에서 농부가 자신의 모든 것을 판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도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진짜 초점은 농부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우리 교회를 사셨죠. 교회는 복음이라는 보물을 발견하면서 인본주의 가치를 팔아, 즉 인본주의 가치를 상실하고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고,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생명을 팔아 교회를 얻게 되죠. 

 그래서 12절, 이런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되면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에 속해 있는 땅과 바다는 화 있다고 나옵니다. 이렇게 화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아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나오죠. 

 여기서 나온 ‘너희’도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재미있죠? 하늘에 거하는 자들도 ‘선택받은 자들’이므로 그들에게 ‘즐거워하라~~’고 하시지만 이 땅에 남아 있는 선택받은 자들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이 거듭난 자아와 옛 자아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아 분열증 같은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계시록은 이렇게 묵시문학과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이죠. 

 조금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마칩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이미 태초에 이미 구원을 받았죠. 그래서 그들은 지금 하늘에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역사 한 시점에 나의 옛 자아가 들어와서 80년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 나의 옛 자아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과 고난이라는 도구가 작동하죠. 이때 사탄은 인간의 욕심을 부추겨 고난으로 이끌고 율법을 가지고 인간을 고소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나의 죄와 무능력, 그리고 무가치함을 알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치(정체성)를 알게 되고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