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용(사탄)에게 권세를 받은 짐승의 정체는 구체화된 인본주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인본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사탄-짐승-인본주의-사람’은 사실 상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인본주의는 ‘과장(속이는 것)’ 하는 것과 ‘신성 모독’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나옵니다. 인본주의 가치들(돈, 권력, 인기, 명예, 종교)을 하나님 보다 더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본주의가 42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는다고 나오죠. 42달은 1260일, 3년반, 한때두때반때(1년+2년+반년=3년반) 모두 같은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예수님의 공생애 이기도 하면서 선택받은 자들의 전 생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선택받은 자라도 모든 인생 동안 인본주의 함정에 빠져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6절, 이 짐승(인본주의)은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의 이름과 성도를 비방한다고 나옵니다. 심지어 7절을 보면, 이 짐승(인본주의)은 성도를 이긴다고 나오죠. 여기에 매우 중요한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인본주의에 묶여 인본주의 포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옛 자아는 성경에서 복음을 읽고도 그 복음으로 다시 ‘종교’를 만듭니다.
물론 우리는 말씀대로 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율법적 노력도 충실히 해야 되죠. 그러나 그 노력의 핵심은 ‘나는 할 수 있다~~’ 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없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구나~~ 그래서 나는 예수님만 소망하는 수 밖에 없구나~~’라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모든 자들은 끝내 인본주의 종교가 가리키는 자기 우상 숭배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을 8절에서 말하고 있죠. 그래서 8절은 예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 짐승(인본주의)에게 경배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선택받은 자들이 인본주의를 경배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자신의 노력,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책’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후 9절에서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오직 구원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자만이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말씀은 표면적으로 교훈과 종교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참 복음은 그 말씀 속에 은닉되어 있죠. 그 복음이 들리는 자들만이 구원받은 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분명하게 선언하셨죠.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하지만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서는 인본주의 함정에 무조건 묶여 있게 됩니다. 이 역설적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계셔야 합니다. 다시 7절을 보세요.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교회, 가정, 직장 생활을 잘 해내고 편안한 생활을 한다고 해서 나는 이기고 있다~~ 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그 상태가 바로 인본주의에 포로로 잡혀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칼로 죽을 수도 있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10절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있다고 결말짓죠. 왜냐하면 역설적으로 나의 이런 상태를 인식할 때 비로서 ‘나는 예수님만 소망할 수 밖에 없구나~~’의 소망, 인내, 믿음이 발동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다는 구절 처럼 복음이 작동하는 방식이 매우 신비롭죠?
끝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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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참 복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런 분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 분께 이 묵상을 전해주시고 함께 고민하세요.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 그 분의 음성(복음)을 듣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길을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묵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할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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