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짐승의 정체는 ‘구체화된 인본주의’입니다. 특히 지금 다루고 있는 두 번째 짐승은 어린양을 흉내 내고 있죠. 더불어 두 뿔이 있고 용(사탄)처럼 말한다(속인다)고 나오기 때문에 인본주의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는 ‘인본주의 종교’를 가리킵니다.
특히14절에서 짐승이 이적을 행한다고 말함으로써 ‘종교적 속성’를 더욱 강조하고 있고 이를 통해 땅에 거하는 자들이 ‘미혹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14절 마지막을 보면 '우상'을 만들라고 나옵니다. 모두 종교적 속성을 나열하여 인본주의 최상위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광야 3가지 시험은 인본주의 상, 중, 하 층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가장 아래층은 먹는 시험입니다. 여기서 ‘먹는 것’는 의, 식, 주의 대표입니다. 이것은 ‘재물(돈)’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을 때 까지 돈의 포로로 살게 됩니다. 그 돈을 통해 의, 식, 주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권력’입니다. 인기라고도 볼 수 있죠. 모든 인간은 먹고 살만하면 권력을 추구하죠. ( 사실은 동시에 추구합니다. ) 정치, 권력, 인기, 명예는 모두 같은 속성입니다. 타인을 지배하거나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이 인본주의 최상층인 ‘종교’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데려다 놓고 뛰어 내려라~~ 그러면 천사가 수종든다고 합니다. 성전 꼭대기는 모든 성도가 볼 수 있는 곳을 의미하는데 이곳에서 뛰어 내려 천사가 수종을 들면 그것을 본 모든 성도는 그 자를 대단하게 여기면서 숭배할 수 밖에 없죠. 즉, 그 자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궁극적으로 인본주의 바벨탑의 최상층 모습입니다. 교회의 이면적 모습에서는 끊임없이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이 성도들에게 박수를 받으려고 발버둥칩니다.
아픈 이야기이기만 모든 크리스찬은 이 현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목사도, 직분자도, 봉사자도, 성가대도 심지어 주일학교 꼬마들이 앞에 나와 찬양을 할 때에도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10만원을 봉헌하고 주보에 내 이름이 빠졌는가?를 살피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를 수종드는 모습을 다른 성도들이 본다~~ 어떨 것 같습니까? 랄랄라 방언 하나로 10만 교인을 모이게 한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는 저기 가라~~ 할 정도의 상황이 벌어지겠죠?
우리는 이 세 가지 시험을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시험을 이기셨죠. 그런데 그 분이 어떻게 이기셨죠? “말씀”으로 이겼죠. 이렇게 ‘말씀으로 이겼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즉, 선택받은 자들도 이 세 가지 시험에서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말씀, 즉 복음을 깨닫게 되면서 ‘아~~ 나는 역시 안 되는구나~~ 이래서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시험을 받을 수 밖에 없으셨구나~~ 나는 그냥 예수님만 소망하는 방법 밖에 없구나~~’ 라는 고백의 증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역설적인 방법으로 복음은 구원을 이루어냅니다.
그런데 유기된 자들은 이런 증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종교인’으로 머물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신앙생활이라는 탑을 쌓습니다. 자신의 공로와 업적을 쌓죠. 그들은 예수님을 소망하는 것이 목표가 되지 않고 인본주의 종교생활 그 자체가 목표가 됩니다. 이것을 인본주의 숫자로 표현하면 ‘6’이 됩니다. 6은 영원히 7(천국, 안식)이 될 수 없는 숫자이기도 하고 이 땅(4)만 증명(2) 하다가 죽는 숫자(4+2=6)이기도 합니다. 인본주의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흉내 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숫자 3을 따라서 6을 세 번 666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인본주의 속성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가 재물(돈,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이 666표를 받아야만 매매를 할 수 있는 상황, 즉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서 옛 자아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묶일 수 밖에 없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때때로 그런 나를 보게 하시면서 ‘아~~ 이래서 예수님이 필요할 수 밖에 없구나~~ 오직 그 분만을 소망해야겠다~~’라는 방향으로 견인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만을 소망할 수 밖에 없구나~~"를 깨닫는 것이 마지막 목표입니다. 더 없습니다. 그러나 유기된 자들은 이 명제를 던지면 항상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라고???" 의 또 다른 끝을 묻죠. 이것을 다를 이, 끝 단 =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똑같이 이 질문을 예수님께 물었죠.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결말짓습니다.
"요6: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