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14:6-12(24.10.31.목)

은혜바라기 2024. 10. 31. 07:55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성경에 나온 천사는 대부분 ‘성령’으로 해석하셔도 됩니다. 물론 ‘천사=성령’은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께서는 각각 존재하시지만 같은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죠. 우리가 유한한 존재로 이 땅에 있는 동안은 삼일일체의 완벽한 해석은 불가능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사=성령’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온 천사들이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을 100% 순종(반영)합니다. 그리고 세 분 하나님 중에서 선택받은 자들을 견인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천사는 성령님의 수종을 드는 것이므로 천사는 성령님의 손으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심지어 성경은 종종 예수님도 ‘천사’로 지칭하는 경우도 있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과 교회도 한 몸이기 때문에 선택받은 자들(교회) 각 각을 ‘예수님의 지체’라고 합니다. 이런 ‘영적 연합’의 관계는 이 땅에서 100%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천국이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라고 계속 말씀드렸지만 이런 영적 관계로써의 천국은 우리가 100%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천국을 장소화 시켜서 설명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영적 연합’의 개념은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족관계 특히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관계는 이런 영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 시스템인 것입니다. 

 여자(아내=교회)가 남자(남편=예수님)의 몸(갈비뼈)에서 시작한 것 처럼 자식도 엄마의 배 속에서 한 몸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자식은 엄마와 분리되어 각각 별개의 인격이 되죠. 과학은 이런 과정을 우연히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연합 원리(한 몸 원리)’를 우리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만드시 시스템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과 아내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특별한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만나 생명(구원)을 낳는 것까지 모두 복음을 설명하고 있죠. 

 6절, 성령께서는 ‘민족, 종족, 방언, 백성 = 선택받은 자들(교회)의 정체성’ 에게 전할 복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7절, 성령께서는 심판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하시죠. 그래서 8절에서 성령께서는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 고 합니다. 큰 바벨론은 인간 세상 전부를 말합니다.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이 인본주의가 모든 사람들에게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고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술 취하지 말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은 ‘소주 먹고 비틀 비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식사 때 마다 죄인, 창녀, 세리들과 포도주를 드셨죠. 심지어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포도주와 독주를 먹고 찬양하라는 구절도 나옵니다. 

 술의 특징은 마시면 또 마시고 싶고 결국 중단하지 않으면 술이 나를 먹고 비참한 모습으로 추락합니다. 이런 술의 속성을 인용하여 ‘인본주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에서 최고로 생각하는 돈, 명예, 권력, 종교, 인기를 쌓고 또 쌓다 보면 더 쌓고 싶고 그러다가 결국 그 돈, 권력, 인기에 내가 잡아먹히게 되면서 허망한 삶으로 끝나는 인간의 종말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 나오는 ‘짐승’도 구체화된 인본주의를 의미합니다. 인본주의에 묶여서 인본주의가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가리켜 ‘그 짐승(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10절에 보면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다고 나옵니다. 또한 11절 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고 나오죠. 인본주의에 묶여 쉬지 못하고 포로와 같은 삶을 사는 이 땅의 고된 인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기된 자들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유기된 자들과 똑같이 옛 자아의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유기된 자들과 다른 점이 12절에 나오죠.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라고 나옵니다. 조금 이상하죠? 정말로 성도들은 모든 고난을 이길 만큼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부터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자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연한된 한 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해석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인내하시고 이기셨죠.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내셨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이 ‘복된 소식(복음)’을 알게 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죠. 이것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 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