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진행중)

마가복음1:35(25.01.06.월)

은혜바라기 2025. 1. 6. 08:10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특별히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구분해서 기도할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장면을 따로 기록해 놓았죠. 그 이유는 예수님 스스로 이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복음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지만 선악과 사건 이후에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분리된 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전에서 죄의 정의를 찾으면 ‘과녁에서 벗어나다’ 라고 되어 있죠. 우리가 알고 있는 살인, 간음, 절도, 거짓말 같은 것은 죄가 아니라 죄의 증상입니다. 

 이렇게 죄인이 된 인간에게는 여러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종교성’입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게끔 창조되었는데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인본주의 삶을 선택했죠.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과 연결되었던 소통의 통로가 빈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이것을 ‘종교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그 빈공간에 우상을 끊임없이 채우려고 하죠.

 본인은 종교가 없다고 우기지만 연예인과 정치인을 우상처럼 따르는 행위나 이념을 신봉하는 것도 종교성의 일환입니다. 인간은 개구리와 같은 파충류, 지네와 같은 곤충, 심지어 생명 없는 돌까지 우상으로 섬깁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믿기도 하죠. 자신의 주먹, 자신의 머리, 자신의 성실을 믿기도 하죠. 인간은 이렇게 끊임없이 알 수 없는 신을 만들어 인본주의 종교를 만들어 냅니다. 사도행전17장을 보면 바울이 무수히 많은 신을 섬기는 도시인 아덴에서 전도를 하는데 그중 '알 지 못하는 신' 이라는 신을 섬기는  종교도 있다고 나옵니다. 

 이렇게 종교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우상신과 소통을 하는 방법인 ‘기도’라는 종교적 산물이 탄생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천지창조 속에는 ‘기도’는 없습니다. 기도는 죄가 들어 온 이후 나타난 것이죠.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기도라는 형식이 존재할 필요 없이 하나님과 바로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죄인이 된 인간은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과 대화하는 법까지 만들어서 종교를 탄생시키죠. 

 이미 죄인이 된 인간은 이렇게  스스로 만든 인본주의 종교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의 종교를 이용하셔서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행하는 기도도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죠. 

 기도할 때 눈을 감는 것은 ‘이 세상 인본주의를 보지 말라’는 것이고 기도할 때 두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께 무조건 항복’이라는 설명입니다. 즉, 기도는 실제로 두 손을 들어라 혹은 두 손을 모아라 그리고 눈을 감아라~~ 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하던 인본주의 종교행위를 이용하여 진짜 기도인 ‘하나님과의 대화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인본주의 세상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 항복하여 온전히 그 분께 신뢰하여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죠. 

 그럼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손수 어떤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예수님께서 ‘새벽’ 이라는 시간을 구분해서 기도하신 이유는 인본주의와 시간적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한적한 곳’이라는 장소를 구분해서 기도하신 이유는 인본주의와 공간적 단절을 의미한 것입니다. 롯이 소돔을 탈출할 때 하나님께서는 롯에게 당장(시간) 소돔(장소)을 벗어나라고 했죠. 이렇게 예수님께서 도 자신의 기도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인본주의과의 단절'이 하나님과의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정리할께요. 기도는 새벽5시에 교회라는 장소에 가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혹은 두 손을 들고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선택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아무때나, 늘, 항상, 인본주의와 단절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쉬지말고 기도하라' 의 핵심입니다. 

 기도는 길을 걸으면서 해도, 침대에 누워서 해도, 샤워를 하면서 해도, 그 무엇을 하면서도 할 수가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그 무엇을 하면서도 할 수 있다.’ 가 아니라 ‘그 무엇을 하면서도 해야 한다.’가 맞습니다. 이것이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의 취지죠. 그런데 정해진 시간에 두 손을 모아서 하는 것을 기도라고 우긴다면 그 사람은 24시간 내내 그 자세를 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늘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의 방법은 오직 하나 ‘인본주의와의 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도 이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우리 아들 수능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욕망이죠. ‘우리 교회 사람이 많아지도록 해 주세요’도 ‘명분 속에 숨은 공동체 욕망’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즉, 복음을 아는 자, 예수님의 정체성을 정확히 아는 자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마지막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의미는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기도하실 것입니다~~ 라는 의미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기도할까? 를 알려면 예수님의 의도와 생각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아는 자'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이러나 저러나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자, 즉 복음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님과 한 몸이므로 기도가 가능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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