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진행중)

마가복음1:36-39(25.01.07.화)

은혜바라기 2025. 1. 7. 08:07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오늘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 늘 제자들과 함께 계신 이유는 당시 제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선택받은 자라면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생생하게는 못 느끼시죠? 그 이유는 거듭난 피조물로써의 여러분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있지만 이 땅에서 여러분은 옛 자아로 살기 때문입니다. 옛 자아는 ‘죄인’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인’이란 영적으로 죽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렇게 영적으로 죽은 자인 ‘죄인’으로 살아야만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복음적 구조 때문에 반드시 죄인의 삶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복음은 내가 나를 스스로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더 증명될수록 예수님의 필요성이 더 커지면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잡하고 역설적인 영적 구조는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우리에게 알려주기 전 까지는 절대 알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찬이라고 하는 자들은 그냥 ‘종교인’으로 종교활동을 하는 것 뿐이죠. 

 37절을 보면 제자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보고합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입니다. 

 그런데 38절 예수님의 답변을 보면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고 하죠. 여기서 핵심은 ‘다른’입니다. 재미있죠? 상상을 해보죠.

 어떤 목사가 설교를 유창하게 합니다. 그랬더니 그 교회 강당에 수많은 사람이 모입니다. 그러자 목사가 다른 곳으로 갈래~~ 라고 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죠? 

 더 이상한 것은 예수님의 그 다음 말씀입니다.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고 하신 후 ‘내가 거기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교회에 사람을 많이 채우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모으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분리하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풀면, 전도는 예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99마리(모든)의 양을 나두고 1마리(다른)의 양을 찾는 비유와 일맥상통합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찾아서 그들을 인본주의에서 분리시켜 구원시키는 것이죠. 

 그러면 교회에서 전도대회를 하고 연예인 간증을 시켜서 사람을 모으고 설교하면서 인본주의 교훈( '긍정의 힘'과 같은)을 가르치고 매일 길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은 의미가 없는가? 이에 대한 답변이 ‘사도행전’입니다. 즉, 표면적으로는 ‘사도행전’이지만 본질은 ‘성령행전’인 것이죠. 

 예수님의 명령 때문에 복음은 땅 끝까지 계속 전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명령은 그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땅 끝이라는 의미는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이 그 어느 역사적 시간대에 있더라도, 그 어느 공간적 위치에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전부 찾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뜻대로 성령께서 복음을 들고 선택받은 자들을 다 찾으시죠. 전도는 100%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사도와 제자들이 하는 것 같이 보일 뿐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에서 분배의 문제로 분쟁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초로 ‘집사’라는 직분이 생기죠. 사도들이 집사를 뽑아서 교회 일을 시키자고 의논했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뽑힌 집사들이 교회 일을 했나요? 아니죠. 모든 집사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빌립집사는 선교에 준하는 사역을 했죠. 사도들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일을 하는 집사’가 탄생했지만 성령님은 사도들의 어리석은 결과를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으로 읽으시면 정말 많은 것이 보이고 재미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신비’라는 영역으로 움직입니다. 매년 100명 씩 교회에 앉히는 전도왕 집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도왕 집사의 종교적 허영심의 발로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명예, 업적, 공로를 챙기려는 ‘인본주의 종교인’의 행위일 뿐이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도 다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  하지만 성령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택받은 자들은 교회 전도 대회를 다 거부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죠? 어렵죠? 그래서 이 과정을 다룬 성경이 ‘사도행전’입니다. 성령을 통해 복음이 전달되어 참 교회가 어떻게 지어지는가?를 다룬 책이죠. 

 한 가지 더 소개하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고 죽자 12제자가 11제자가 되었죠. 그러자 베드로는 사도행전 초반에 새로운 제자 한명을 재비뽑기 하자고 하죠. 그런데 이때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기다려라’고 한 기간이었죠. 그래서 이 제자뽑기 사건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바로 직전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사도뽑기 사건은 성령을 받지 못한 베드로가 어떤 뻘짓을 하는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때 뽑힌 맛디아는 이후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죠. 나중에 12번째 빈 자리는 예수님께서 직접 뽑습니다. 그 사람이 ‘사도 바울’ 이죠. 
 
 지금도 1월1일 송구영신 예배에서 많은 목사들이 제비뽑기로 말씀을 뽑아서 그것이 내년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성도들을 기만하고 있죠. 그러면서 제비뽑기의 성경적 근거로 멍청한 베드로의 사도 제비뽑기 에피소드를 예로 듭니다. 사도행전은 답 없는 인간을 데리고 어떻게 성령께서 복음을 이 땅에 전파하셨는가? 에 대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런 멍청한 베드로가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며 성령님의 견인하심만 믿게 됩니다. 

'마가복음(진행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2:1-5(25.01.09.목)  (1) 2025.01.09
마가복음1:40-45(25.01.08.수)  (1) 2025.01.08
마가복음1:35(25.01.06.월)  (1) 2025.01.06
마가복음1:32-34(25.01.03.금)  (2) 2025.01.03
마가복음1:29-31(25.01.02.목)  (2) 202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