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마리아의 어원은 ‘마라’입니다. 마라는 쓴물이라는 뜻이죠. 즉, 마리아는 죄인 된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죄인 된 교회와 함께 있다는 것을 복음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대부분 동방박사들이 3명이라고 알고 있죠. 예물이 3개라 그런 오해를 하게 된 것이죠. 동방박사들은 몇 명인지 모릅니다. 예물이 3가지인 것은 중요합니다. 3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숫자이죠. 즉, 복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황금,유향,몰약은 복음을 가리킨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키는 유향과 몰약 드리고 예수님의 왕되심을 가리키는 황금을 가리키는 설명이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헤롯의 계획은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죽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복음은 진행되어야하기 때문이죠.
왜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예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애굽으로 피하게 만드시고 다시 애굽에서 나오게 만드셨을까요? 정확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출애굽 사건과 같은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애굽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에게 절대적 규정 한 가지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의 탈출입니다. 이 인본주의가 바로 ‘선악과’의 본질입니다. 즉, 기준이 ‘나’에게 있는 것, 본질이 인간에게 있는 것에서 탈출하는 것이죠. 이렇게 탈출하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의 피(양의 피)’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영향력 밖에 있는 자들은 모두 죽죠.(장자의 죽음 – 장자는 가족의 대표 – 즉, 모든 가족의 죽음을 뜻함)
선택받은 자들에게 '출애굽'은 반듯이 필요한 과정이죠. 교회를 다니는 자들이 전부 복음에 눈을 뜬 자들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목적에 의해 교회를 다니는 자들이 대부분이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전부 '자기의 믿음'일 뿐입니다. 참 믿음은 영적 눈을 뜨고 복음을 보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 첫 과정이 바로 '출애굽'입니다. 즉, 인본주의와의 분리입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와 떨어져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창조된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의 바벨탑인 인본주의와 분리된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 설명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면서 꾸는 '꿈'입니다. 과학자들이 꿈을 왜 꾸는 것인가?를 많이 연구하지만 그 이유는 뚜렷합니다.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창조물일 뿐입니다. 꿈 속에서 괴물에게 쫓겨서 도망다녀 봤을 것입니다. 정말 죽을 둥 살 둥 도망치죠. 꿈 속에서는 다리도 빨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 꿈 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경우가 생기죠. 흔히 자각몽이라고 합니다. 그 때 부터 완벽하게 '평강'이 찾아 옵니다. 오히려 꿈을 이용해 가지고 놀죠. 그런데 바로 우리의 인생이 바로 이 꿈과 같습니다. 즉, 우리의 인생은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커다란 상징입니다. 이 커다란 상징 속에 오직 실체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짜 실체는 이 세상의 종말 혹은 개인적 종말 이후죠. 꿈으로 치면 꿈을 깬 순간 부터가 현실인 것 처럼 말이죠.
복음을 보게 된 순간 부터 이런 관점을 갖게 됩니다. 즉, 정해진 기상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꿈에서 깰 수는 없지만 그 꿈을 자각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와의 분리 즉, 출애굽을 뜻합니다. 정해진 시간까지는 우리는 인본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으로 자각한 자들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이 실체(진리)임을 알게 된 자들이죠. 이것을 알려주신 것을 '은혜'라고 하죠. 그리고 이 은혜를 받게 되면 우리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평강'을 얻게 되죠. 그래서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죠. 그런데 선택받지 못한자, 즉, 유기된 자들은 이 악몽을 끝까지 현실로 믿게 되면서 거기에 묶이죠. 그것을 노력하고, 그것을 쌓으며 그것에 묶여 버립니다. 그 상태로 개인적 종말을 맞이하게 되면 그 이후의 영적인 삶도 그 악몽 즉, 지옥에 묶여 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임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이 세상 즉, 인본주의는 지옥의 상징입니다. 선택된 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 남아 있기에 아직은 세상이 살만한 것이죠. 그러나 마지막 선택된 자들까지 골라내신 후에는 세상에 담아 놓으신 복음을 전부 걷어 내시죠. 즉, 복음이 완벽하게 빠진 인본주의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지죠. 음식은 말씀을 뜻하므로 말씀을 먹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대소변을 누면 기분이 좋아지죠. 더러운 것 즉, 인본주의와 분리되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죠. 좋은 집에 살면 기쁘죠. 좋은 집은 천국 혹은 성전 되신 예수님을 가리키죠. 즉, 진짜 좋은 집인 예수님 안에 거하면 행복하다는 것을 가르치죠. 이런 식으로 모든 천지창조, 인생은 복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보지 못하고 오직 인본주의에만 묶여서 사는 자들이 대부분이죠. 그러나 모든 개인적 종말 이후에는 먹어도, 싸도, 좋은 집을 얻어도 전혀 행복하지 못한 진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사실 이 세상에서도 약간 힌트는 주십니다. 즉, 평생 꿈이었던 좋은 집을 얻어도 몇 달 지나지 않아 행복감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죠. 이런 힌트를 통해 복음을 알아야하는데, 대부분은 또 다른 없어질 행복감을 향해 또 다른 꿈을 향해 노력하죠) 끔찍하죠.
복음이 걷어진 개인적 종말의 삶 이후에는 인본주의에서만 통용되는 경쟁, 다툼, 끊없는 쌓기, 댓가없는 노력, 보이지 않는 터널같은 어두움만이 존재합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겠죠?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 세상의 진면목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옛자아의 진면목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출애굽'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실체이신, 진리이신, 생명이신 예수님 안으로 ( 가나안 ) 들어가야하죠. 그러기 위해 출애굽 과정과 광야의 삶의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이 세상의 가치가 무너진 세상인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진짜 가치인 복음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해야합니다. 자각몽을 하면 평안함을 얻게 되는 것 처럼 복음을 알게 되면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옛자아와 더불어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평강이 평생 왔다 갔다 하겠지만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인식하므로 오히려 복음의 필요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게 되면서 나중에는 그것 조차 감사로 다가오죠. 감사에 감사를 평강에 평강을 믿음에 믿음을 더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선택받은 자는 복음으로 인해 점 점 더 바벨탑에서 분리되고, 유기된자들은 더 더욱 바벨탑의 꿈을 위해 달려가면서 점 점 더 바벨탑의 꼭대기를 바라보는 시각에 묶이게 됩니다. 완벽하게 반대 방향으로 분리가 일어나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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