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부한 자들아’의 의미는 인본주의 바벨탑을 쌓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즉,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 전체를 뜻하며, 곧 ‘나’를 뜻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치’를 쌓죠. 그러나 그 ‘가치’는 실제로는 어떠한 가치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이 ‘명언’으로 들리지 않고 ‘진리’로 들릴 때 비로서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인생은 비참하다는 것이 인생의 결론입니다. 인간은 늘 '잘살기' 하려고 발버둥 치죠.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인생을 비참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죠.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 메카니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잘살기'가 잘 안되니 수시로 괴롭죠. 하지만 인생의 본질이 '비참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갖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병들고, 늙고, 비참하게 죽습니다. 그것을 화려한 성취, 성대한 장례식, 과거의 업적 찬양으로 색칠하는 것 뿐 입니다. 더 많은 인간 관계, 더 좋고 든든한 집, 더 많은 후손,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는 재물로 하나님이 정해 놓은 비참한 인생과 비참한 인생의 결말을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고 발버둥 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 1-3절의 말씀의 주제입니다.
"창3:18-19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은 이후부터 인생 속에 ‘가시덤블과 엉겅퀴’를 넣으셨죠. 또한 인간에게 죽음을 명하셔서 그 죽음으로 인도하는 각종 질병과 늙음이 생겨났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결국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수고하여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고 결국은 비참하게 병들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절대 인간은 이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애초에 ‘인생’의 정의는 ‘비참함’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실 점점 비참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비참한 상태인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선악과 에피소드 이후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비참한 상태라는 것을 인생의 비참함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런 인생의 비참함은 그 본질이 바로 ‘복’입니다. 이 비참함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소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의 말씀은 그 자체로 더 깊은 복음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4절에 에서 나온 '추수'라는 부분은 예수님께서 그 분의 신부(지체)들을 찾아 교회로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추수하는 자'는 바로 예수님이시죠. 그리고 그 삯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4절은 예수님의 교회가 그 분의 품으로 오는 것을 거역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4, 5절은 그래서 이중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죠.)
그 이유가 5절에서 '사치와 방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치와 방종(방탕)이라는 말의 뜻은 바로 '낭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신 이유는 바로 '복음'을 설명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죠.그런데 인간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오직 바벨탑 쌓기, 즉 '잘살기'에 묶여 있게 되면 하나님의 방향에서, 그런 인간들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알아가지 못하는 삶을 바로 '사치와 방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 ‘복음’을 외면한 채 오직 ‘인본주의’에 묶여서 살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말씀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5절에서 보면 너희가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다고 하죠. 여기서 말하는 ‘살륙의 날’이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죽인 날’을 뜻하죠. 그리고 그 날의 본질은 2천년 전 그 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영향력이 펼쳐져 있는 온 인류의 역사 전부를 뜻합니다. 즉, 구약에서는 ‘어린 양을 살륙하여 제사를 드리면서’가 해당되고 신약 이후로는 ‘성경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면서’가 해당되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일 묵상할 6절 부터는 ‘의인’에 대한 이야기, 즉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끝
'야고보서(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5:9-11(22.04.27.수) (0) | 2022.04.27 |
---|---|
약5:6-8(22.04.26.화) (0) | 2022.04.26 |
약4:13-17(22.04.22.금) (0) | 2022.04.22 |
약4:11-12(22.04.21.목) (0) | 2022.04.21 |
약4:9-10(22.04.20.수) (0) | 2022.04.20 |